사생결단이다. 다음 경기를 볼 수 있는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포스트 시즌 무대는 그렇다.
야구는 변수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자그마한 나이스 플레이와 미스 플레이가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준비한 스포츠조선의 야심찬 포스트 시즌 기획. [PS포인트]다.
타격(B) 수비(F) 주루(R) 피칭(P)으로 세분화, 요점을 정리했다.
[PS포인트-R(주루)]
29일 잠실 야구장.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리는 장소. 덕아웃으로 들어오던 양의지는 싱긋이 웃었다.
그리고 "아~ 제 투혼이 완전히 묻혔어요. 정수빈 때문에."라고 했다. 양의지는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나성범의 타구를 맞고 엄지발가락 미세골절을 당했다. 매 경기 진통제를 먹고 출전한다. 두산 김현수는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때 "양의지 때문에 누구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엄청난 정신력이다. 양의지의 부상 투혼은 두산을 한국시리즈로 끌고 온 강력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여기에 하나가 추가됐다.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타격감을 보이고 있던 정수빈이 횡액을 당했다. 1차전 6회 번트 도중 왼손 검지를 맞았다.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검지 손가락 안쪽을 6바늘이나 꿰맸다. 하지만, 정수빈은 "타격과 주루는 문제없다"고 했다. 양의지는 "나는 부러졌고, (정)수빈이는 꿰맸을 뿐인데..."라며 끝까지 농담을 던졌다. 정수빈의 투지를 강조하려는 그만의 화법이었다.
정수빈은 이날 1번 지명타자로 나섰다. 타격감은 여전히 좋았다. 문제는 주루 플레이였다. 그의 특기는 팔이 먼저 들어가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다. 하지만, 정수빈은 "주루에서 단 한 가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만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물고 있는 왼손 검지의 꿰맨 부분이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발이 먼저 들어가는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급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팔이 먼저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는 5회 선두타자로 나서 깨끗한 2루타를 쳤다. 이때 구자욱의 펜스 플레이가 허술했다. 3루를 노리던 정수빈은 급하게 2루로 귀루하는 과정에서 오른손을 땅에 짚었다. 그리고 민병헌의 희생번트에 3루에 다리가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을 했다. 양의지의 좌익수 희생플라이가 깊었기 때문에, 정수빈은 홈으로 편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6회가 문제였다. 1사 1, 2루에서 정수빈은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1사 만루 상황에서 허경민이 2루수 앞 병살타 성 타구를 날렸다. 정수빈이 2루로 도달하기는 완전히 늦었다.
하지만 정수빈은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한 뒤 끝까지 2루수 나바로의 송구를 방해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왼팔이 높게 들려지면서, 송구와 겹칠 수 있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결국 두 차례의 슬라이딩을 정수빈은 자신의 왼손 검지를 최대한 보호한 채 자연스러운 슬라이딩을 했다. 정수빈 특유의 발군의 센스가 빛나는 대목. 병살타를 방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로 심리적 트라우마도 극복했다.잠실=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