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날 3차전을 앞두고 "오늘 구자욱이 선발로 나가는데 고민 끝에 이승엽을 빼기로 했다. 승엽이는 대타로 내보낼 것"이라고 했다.
이승엽이 올시즌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은 몇 차례 있었지만, 모두 부상 때문이었다. 몸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선발서 제외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류 감독은 타순 작성에 많은 고민을 하면서도 일정한 메시지도 담았다. 이승엽이 대타로 들어서는 상황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게 류 감독의 얘기였다.
그러나 삼성이 6회까지 1-5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이승엽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4점차라면 대타로 내보낼 상황이 쉽게 오는 것도 아니다. 삼성은 7회초 2사 1루 기회가 있었지만, 9번 유격수 김상수 타순이라 대타를 낼 수는 없었다. 이어 8회는 상위타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역시 이승엽의 타격은 볼 수 없었다.
마지막 9회초 공격. 박석민과 채태인이 아웃되면서 경기는 마무리가 돼가는 상황. 그런데 삼성은 대타로 이승엽을 내보냈다. 우익수 박한이의 타순이었는데, 더이상 대타 기회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류 감독은 이승엽에게 기꺼이 기회를 줬다. 숱한 우승을 이끈 팀의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 또한 이승엽이 타격감을 조금이라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류 감독의 배려였다.
공교롭게도 이승엽은 이 타석에서 출루에 성공했다. 두산 마무리 이현승을 상대로 볼카운트 1B2S에서 4구째 142㎞짜리 직구에 오른쪽 허벅지를 맞았다. 다행히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루로 나간 이승엽은 대주자 박찬도로 교체됐고, 삼성은 이지영의 중전안타, 김상수의 투수를 맞고 흐르는 내야안타로 만루의 위기를 잡았다. 홈런이라도 나온다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 두산 벤치는 타구에 맞은 이현승을 점검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구자욱이 1루수 땅볼로 물러나며 그대로 경기가 종료됐다. 9회 마지막 순간, 이승엽의 등장은 삼성팬들 뿐만 아니라 두산팬들에게도 충분히 볼거리가 됐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