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돌아온 '군데렐라' 이정협을 향한 두가지 의심의 시선이 있었다.
첫째는 '과연 K리그 클래식에서도 통할까' 였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와 클래식의 차이는 제법 크다. 챌린지에서 맹활약을 펼쳤지만, 클래식에서 부진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 이정협은 군 입대 전에도 클래식에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두번째는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전격적으로 A대표팀에 발탁한 이유는 뛰어난 공간 활용 능력과 빼어난 연계력이었다. 이정협은 A대표팀에서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2선의 공격력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중점을 둔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전력이 떨어지는 부산에서는 직접 찬스를 만들고 해결해야 했다.
이정협은 복귀전에서 의문 부호를 느낌표로 바꿨다. 이정협은 2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대전과의 35라운드(2대1 대전 승)에 선발출전해 61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맹활약을 펼쳤다. 이정협은 "오랜만의 경기라 걱정되기도, 설레이기도 했다. 그간 클래식 경기를 보면서 준비를 했다. 다행히 골에 일조를 했다. 그 한골로 끝나 팀에 미안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예상 보다 빠른 복귀전이었다. 이정협은 12일 전역해 14일 부산에 복귀했다. 곧바로 복귀전을 치르지 못했다. 안면복합 골절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협은 8월 경남과의 챌린지 경기 도중 부상했다. 이 부상으로 A대표팀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 출전했지만,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최영준 신임 부산 감독은 이정협을 아낄 계획이었다. 강등 플레이오프를 대비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연패가 이어지며 반전의 카드가 필요했다. 이정협의 몸상태와 의지를 확인한 최 감독은 전격적으로 이정협을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최 감독은 "몸상태가 100%는 아니다. 원래는 리저브로 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미팅에서 팀에 도움되고 싶다고 해서 선발 명단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최 감독의 기대대로 였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대전의 수비수들을 긴장시켰다. 단순히 이름값만은 아니었다. 이정협은 A대표팀에서 보다 움직임 폭을 좁히는 대신 가운데서 확실하게 볼을 지켰다. 뒷공간을 침투하는 움직임도 좋았고, 2선에서 돌아 들어가는 선수에게 적절한 패스연결로 공격의 속도를 높였다. 부산의 첫 골도 이정협에서 시작됐다. 이정협은 전반 26분 뒤에서 넘어오는 롱패스를 발끝으로 방향을 바꿔줬다. 이를 받은 한지호가 골키퍼를 제치고 득점에 성공했다. 후반 4분에는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복귀후 첫 슈팅을 날리는 등 필요할때는 과감하게 슈팅을 날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중볼이었다. 적절한 위치선정과 높은 타점으로 모조리 공중볼을 따냈다. 부상 트라우마가 남아 있음에도 과감히 경합을 펼쳤다. 이정협은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 안하다보면 더 주눅들고, 더 소홀히 할 것 같아서 트라우마도 깰 겸 적극적으로 헤딩에 임했다"고 했다. 특유의 수비가담도 여전했다.
부산은 이정협의 가세와 함께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다. 최전방에 힘이 실어지자 2선도, 수비진도 모두 힘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이정협이 교체아웃된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역전패로 이어졌다. 최 감독은 "이정협이 움직임이라던지 중앙수비와의 싸움에서 버텨주는 플레이가 좋았다. 더 뛰게 하고 싶었지만 근육 경련이 와서 바꿨다. 교체 과정에서 실점이 있었지만, 이정협이 새로운 희망을 줬다"고 했다. 무명의 신인이었던 이정협은 A대표 경험 후 분명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이정협은 "이 전에는 신인이라서 멋모르고 뛰기만 했는데 확실히 전역 후 플레이에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팀에 도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A대표팀 원톱' 이정협은 클래식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냈다.
대전=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