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이 있다. "똑똑한 외국인 투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한 해 농사 걱정할 것 없다." 여기서 '똑똑한'이라는 표현은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현장에서는 이런 실력을 가진 외인 투수를 최소 한 명만 잡아도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이제 그런 정설이 수정돼야 할 듯 하다. 단순히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만 높이는 게 아니다. 올해 포스트시즌을 보면 막강한 구위를 앞세운 외국인 투수들이 가을잔치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그야말로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다.
이는 지난 8일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돼 19일까지 진행된 포스트시즌 7경기(와일드카드결정전 1, 준플레이오프 4, 플레이오프 2)를 복기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외국인 선발투수가 3경기에서 데일리 MVP로 봅혔다. 우선 지난 13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두산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7⅔이닝 5안타 10삼진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넥센 밴헤켄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더니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는 두산과 NC의 외국인 선발투수들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량으로 각자 팀의 승리를 이끌며 MVP가 됐다. 18일에는 두산 니퍼트가 플레이오프 사상 8번째이자 외국인 투수 처음으로 완봉승을 해냈다. 비록 3번타자 민병헌이 멀티홈런을 치며 활약했지만, 니퍼트의 완봉투를 넘어설 순 없다. 니퍼트의 MVP 수상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니퍼트가 완봉승을 해내자 이번에는 마치 경쟁하듯 NC 외국인 선발 스튜어트가 완투쇼를 펼쳤다. 19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스튜어트는 9회까지 단 3안타(1홈런)만 내주면서 완투쇼를 해냈다. 3안타는 전날 니퍼트가 내준 안타수와 같다. 다만 8회초 오재원에게 솔로홈런을 맞은 게 아쉬웠다. 그 홈런이 아니었다면 니퍼트에 이어 완봉승을 따낼 가능성이 충분했다.
이렇게 외인투수들이 현실적으로 워낙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니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한 가지 현상은 이미 나타났고, 다른 한 가지는 향후 후폭풍으로 밀려올 듯 하다.
이미 나타난 현상은 바로 외인 투수의 등판 조정이다. 확실한 1승카드인 외국인 투수를 어떤 타이밍에 기용하느냐가 포스트시즌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사실 니퍼트는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도 불펜 대기중이었다. 5차전까지 갔으면 무조건 선발이다. 그럼 플레이오프 등판이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산이 기적적인 '7점차 역전승'을 거두며 니퍼트를 아낄 수 있었다. 이 과정이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 승리의 숨은 힘이다. 이런 식으로 이제 외인 선발을 가능한 '이겨야 하는 경기'에 몰아 투입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기에 내년 시즌을 앞두고 외인투수 영입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듯 하다. 이미 확실한 선발 요원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나타났기 때문에 각 팀마다 더욱 치열하게 선수 영입 전선을 구축할 듯 하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몸값 상승이 벌어지는 게 우려되지만, 한편으로는 더 실력이 좋은 외인투수가 리그에 참여하면 인기 상승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창원=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