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원의 날'이었다. '슈틸리케 매직'이 또 한번 통했다.
지동원(24·아우크스부르크)이 4년만에 A매치 골을 재가동했다. 13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한국과 자메이카의 친선경기 전반 35분, 코너킥 상황 정우영의 날선 크로스에 이어 문전에서 가장 높이 솟구쳐올랐다. 지동원의 헤더가 골망을 흔드는 순간 슈틸리케 감독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3월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1대0승) 후 6개월, 정확히 197일만의 선발 출전이었다. 4-2-3-1 포메이션의 왼쪽 날개로 나섰다. 2011년 9월 2일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 B조 레바논전에서 6대0으로 대승할 당시 2골을 터뜨렸다. 2010년 12월 30일 시리아전 데뷔전 데뷔골 이후 A매치 11경기에서 8골을 터뜨린 '될성 부른' 공격수가 이후 4년간 A대표팀 21경기에서 침묵했다. 2011년 최연소 프리미어리거로 선덜랜드에 입단했지만, 유럽 진출 이후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 지난 시즌 부상에 시달리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올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절친' 구자철, 홍정호 등과 동고동락하며 컨디션을 서서히 끌어올렸지만 좀처럼 골 소식을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 2일 유로파리그 파르티잔전(1대3패)에선 수비 실수로 자책골성 골까지 내주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최악의 슬럼프 속에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초반부터 적극적인 움직임이 감지됐다. 격한 몸싸움에도 정면승부했다. 전반 26분 왼쪽 측면에서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며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전반 32분 역습 상황, 나홀로 40m 드리블을 감행하더니, 유효슈팅까지 연결했다. 골의 전조였다. 전반 35분 정우영의 코너킥, 지동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올랐다. 4년의 슬럼프를 훌훌 날린 의미있는 한방이었다. '비상하리라, 지동원!' 1500일을 한결같이 기다려온 팬들의 격문이 골문 뒤에서 힘차게 나부꼈다.
후반에도 지동원은 멈추지 않았다. 후반 12분 김진수가 박스안으로 영리하게 찔러준 패스를 이어받은 지동원이 적극적으로 쇄도하며 천금같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오른발 슈팅을 성공시킨 '키커' 기성용과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후반 18분 또다시 지동원의 역습이 시작됐다. 왼쪽 측면에서 쇄도하더니 자신감 넘치는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 손을 맞고 튕겨나온 볼을 황의조가 쇄도하며 왼발로 밀어넣었다. 후반 32분 권창훈과 교체될 때까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선제골과 추가골, 쐐기골에 모두 관여하며 3대0 완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1991년생 골잡이' 남태희 이정협 석현준을 잇달아 살려낸 '슈틸리케 마법'이 지동원에게도 마침내 통했다. '대한민국 공격수의 계보'로 촉망받아온 지동원은 원래 기회에 강한 선수였다.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에서 보석같은 존재감을 뽐냈고, 2011년 6월 빅리그행이 기로에 부딪혔을 때 가나전에서 골을 넣으며 스스로 길을 열었다. 2012년 새해 아침 맨시티를 격침시킨 골을 전설로 회자된다. 런던올림픽 홈팀 잉글랜드와의 8강전, 영국의 심장에서 대포알 같은 선제골을 터뜨리며, 승부차기 승리를 이끈 것도 지동원이었다. 마지막일지 모를 슈틸리케 감독의 시험대, 해야할 경기에서 어김없이 한방을 해주는 '해결사 본능'이 마침내 되살아났다. 지난달 29일 명단 발표를 앞두고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과 지동원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지동원을 한번 더 불러 점검을 가까이서 해보기로 했다. 최근 지동원이 출전시간을 늘려나가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했었다. '대한민국 골잡이' 지동원이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 팬들의 오랜 기다림에 응답했다. 상암=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