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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창 '좀 피해서 잡지'...욕으로 알아들은 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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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은 기본적으로 정석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아니다. 타고난 운동 능력, 센스를 바탕으로 변형된 수비를 한다. 오재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비, 오재원이기 때문에 저지른 실책. 결국 '오재원'은 좀 특별하다.

아마 야구 지도자들이 평소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자세 중 하나가 자세를 낮추고 글러브를 바닥에 대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빠른 타구에 대처하기 쉽고 잔실수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재원은 굳이 이 자세를 고집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다. 오랜 프로 생활을 통해 쌓은 노하우다. 그는 현재 유격수 김재호와 상의해 스스로 시프트를 거는 단계에까지 올랐다.

11일 두산과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린 잠실구장. 오재원 때문에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넥센이 2-3으로 뒤진 8회 무사 1,2루, 서건창의 희생 번트 장면에서 발생했다. 서건창은 3루쪽으로 안전하게 번트를 댔고, 그대로 플레이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런데 타자 주자 서건창과 1루 베이스커버를 들어간 두산 주장 오재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송구 방향이 살짝 옆으로 흐르며 오재원과 서건창이 충돌할 뻔한 것이 문제였다. 오재원과 서건창의 언쟁이 길어지자 타석에 있던 넥센 주장 이택근이 1루쪽으로 달려갔고, 곧 3루쪽 넥센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몰려나왔다. 그러자 두산 선수들도 뛰어나와 대치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오재원의 왼 발이다. 의도적으로 라인쪽에 발을 들이밀었다는 주장과 송구가 휘어져 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취한 자세라는 분석이 팽팽하다. 두번째, 서건창의 입이다. 오재원은 서건창의 얘기를 듣고 순간 흥분했다.

▶오재원 왼발. 의도가 무엇인가?

당시 상황을 보자. 두산은 무조건 2루 주자의 3루 진루를 막겠다는 100% 번트 수비가 아니었다. 유격수 김재호는 자기 자리를 지켰고 3루수 허경민도 홈쪽으로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다만 왼손잡이인 1루수 오재일만 대시해 자신에게 타구가 올 경우 3루 송구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2루수 오재원이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오재원은 허경민이 공을 잡은 순간 이미 1루 베이스에 도달해 있었다.

여기서 오재원의 오른 발은 베이스 위에 있었다. 왼발은 파울 라인 바깥쪽에 위치했다. 서두에 언급한 역시 오재원 답게 '정석과는 맞지 않는 플레이'. 단순히 이 행위만 놓고 오재원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오재원이기 때문에 이런 플레이도, 저런 플레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발이 서건창의 진로를 막는 꼴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주자가 베이스만 보며 달려오다가 순간적으로 놀라 속도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번트를 댄 선수가 서건창이었다. 이미 비슷한 장면에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기에 트라우마가 있다.

한 야구인은 "통상 번트 상황에서 포구가 먼저, 베이스 터치가 다음이다. 그런데 오재원은 이미 베이스를 밟고 있었고, 공이 휘어져 나가며 서건창 쪽으로 왼발이 더 들어갔다"며 "서건창이 속도를 줄이던 와중에 베이스에 도달해서는 완전히 스피드를 죽였다. 오재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떠나 애초부터 베이스를 그렇게 밟고 있는 건 정석이 아니다. 내야수도 주자도 다칠 수 있다"고 밝혔다.

▶오재원은 왜 그렇게 흥분했나.

여기까지만 보면 오재원이 그렇게 흥분할 이유는 없다. 자신이 그런 자세를 취했다면, 상식적으로 서건창이 1루 베이스를 지난 뒤 뭔가 아쉬움을 표하는 행동을 할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둘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 서건창이 혼잣말을 하는 순간, 오재원이 잘못 알아 들었다.

넥센 관계자에 따르면 서건창은 오재원과 충돌을 피해 간신히 1루 베이스를 밟은 뒤 "좀 피하면서 잡지"라는 말을 혼잣말로 했다. 중얼거렸다. 하지만 1루쪽에 관중이 가득 들어찬 데다 선수들이 모두 예민해져 있는 상황, 오재원이 욕설로 들었다. 그래서 곧장 "뭐, X발이라고?"라고 격하게 흥분했다. 사소한 오해가 만든 해프닝이다.

서건창은 억울했다.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후 정수성 넥센 1루 코치가 흥분한 오재원을 말렸고, 서건창도 억울했기 때문에 지지 않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받아 쳤다. 결과는 올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발생한 벤치클리어링. 다행히 큰 충돌 없이 두 팀 선수단은 곧장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