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는 결국 콘트롤이 가장 중요한 거죠."
두산 베어스 좌완 에이스 유희관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매우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투수다. 다른 투수들의 변화구보다도 느린 직구를 갖고 리그 최정상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래서 유희관의 투구에 대해 '느림의 미학'이라는 미사여구까지 따라붙었다. 올해도 30경기에서 189⅔이닝을 던지며 18승5패에 126탈삼진 퀄리티스타트 17번, 평균자책점 3.94를 기록했다. 이같은 뛰어난 활약덕분에 유희관은 '제2회 최동원상' 수상자가 됐다.
'최동원상'은 불세출의 투수였던 고(故) 최동원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만들어졌다. 최고의 투수를 뽑아 상을 준다.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이나 일본의 '사와무라상'처럼 권위와 품격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출발선에 서 있다. 그래서 후보가 되는 기준도 까다롭다. 최동원상 선정위원회는 자격 기준을 만들었다. 등판 횟수(30경기)와 이닝수(180이닝), 승수(15승), 탈삼진(150개), 퀄리티스타트(15회), 평균자책점(2.50)등 6개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각 조건을 100%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후보가 될 순 있다. 유희관이 그랬다. 평균자책점과 삼진 갯수가 부족했다.
그런데 두 항목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유희관이 투표 결과 '최동원상' 수상자가 됐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다. 특히나 KIA 좌완 에이스 양현종이 모든 항목에서 조건에 부합했기 때문에 의문이 더욱 증폭된다. 기준을 다 채우지 못한 유희관이 기준을 모두 충족시킨 양현종을 제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선정위원회에는 7명의 선정위원 중 5명이 출석했다. 일본에 가 있는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과 오전에 메이저리그 중계가 잡혀있던 허구연 해설위원은 문자메시지로 투표에 참가했다. 허 위원은 중계를 마친 뒤 약간 늦게 회의장에 출석했는데, 이미 회의와 투표가 모두 마감된 시점이었다.
이 투표는 메이저리그 사이영상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7명의 선정위원들이 후보들에 대해 1, 2, 3위표를 준다. 투표가 마감된 뒤 1위표에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이 주어져 합산으로 순위가 가려진다. 그 결과 유희관은 총 21점을 얻었다. 양현종은 18점으로 2위에 그쳤다. 결국 선정위원들이 기준을 다 채운 양현종보다 평균자책점과 삼진 갯수에서 기준에 미달한 유희관을 더 높이 평가했다는 뜻이다.
선정위원장인 어우홍 전 감독은 이 결과에 관해 "물론 유희관이 모든 조건을 다 채우지 못한 건 맞다. 하지만 올해 18승이나 하면서 팀을 3위로 이끌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유희관에 대해 다들 '느림의 미학'으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콘트롤이 정말 대단한 투수다. 그 덕분에 수비들도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게 했다. 결국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볼 콘트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