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뒤 그는 다시 배트와 장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묵묵히 공을 후려쳤다. 무려 500개의 공을 친 뒤에야 배트를 내려놨다. 그가 구슬땀을 흘리며 때렸던 것은 어쩌면 야구공이 아니라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쉴 때 배트를 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독한 근성. 두산 베어스 민병헌이 준플레이오프 2차전 MVP로 뽑힌 원동력이다.
민병헌이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2타수 2안타 2볼넷 1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이 덕분에 민병헌은 경기 후 데일리 MVP로 선정돼 공식 후원사인 타이어뱅크의 100만원 상당 타이어교환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민병헌은 전날 1차전에서 극도로 부진했다. 선발 3번 타자의 중책을 맡았지만, 4타수 무안타 1볼넷 1타점에 그쳤다. 찬스에서 좋은 타구를 만들지 못했다. 특히 2-3으로 뒤지던 9회말 1사 만루의 황금같은 기회에서 4구만에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중요한 1차전에 자신을 3번 타자로 투입한 김태형 감독의 믿음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두산이 연장 10회말 대타 박건우의 끝내기 안타로 간신히 이겼지만, 민병헌의 부진은 향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민병헌 본인이었다. 민병헌은 1차전 승리 후 바로 집에 가지 않았다. 대신 500개의 공을 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2차전을 앞둔 민병헌은 "기본적으로 내가 문제다. 상대 투수가 문제가 아니다. 한창 잘 맞을 때는 조상우도 괜찮았고, 양 훈의 공도 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중요한 것은 내가 타격 컨디션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라고 했다.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부진의 원인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았다. 독하고 성실한 민병헌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다.
그런 독한 노력은 금세 결실로 나타났다. 민병헌은 2차전에서 6번타자로 나왔다. 전날의 혹독한 연습에 이어 타순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자 본연의 실력이 나왔다. 1회말 첫 타석부터 찬스를 맞이했다. 2사 만루였다. 민병헌은 서두르지 않았다. 넥센 선발 피어밴드의 제구력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볼넷으로 밀어내기 타점을 뽑았다. 이 볼넷이 분수령이 됐다. 민병헌은 "어제 많은 찬스에서 병살타나 삼진을 당해 위축돼 있던 게 사실이다. 오늘 첫 타석 찬스에서 무난하게 넘어가면서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민병헌은 3회와 5회에 안타를 쳤다. 5회말에는 1사 1, 2루에서 우전안타로 만루를 만들며 역전 득점의 발판까지 마련했다. 8회에도 볼넷을 골라내 이날 100% 출루를 완성했다. 민병헌의 활약 없이 두산의 1점차 승리는 완성될 수 없었다. 김태형 감독 역시 "민병헌이 오늘처럼 타순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우리팀에 힘이 생긴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민병헌 역시 "타격 훈련의 효과도 있었고,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왜 안맞았는지를 생각하고 잘 맞는 방향으로 수정했던 게 좋은 효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지금 우리팀 선수들이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분위기가 좋다. 예전 준우승 때보다 분위기는 더 좋은 것 같다"며 계속 선전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