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예. 군더더기 없이 스마트한 조직을 연상시키면서 비장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지난 3년간 넥센 히어로즈 불펜이 그랬다. 확실한 불펜투수가 부족하다보니 특정 선수에게 크게 의존했다. 가을야구 시즌에는 집중도가 심화됐다. 사상 첫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2013년에 그랬고,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비슷한 장면이 재현됐다.
소수정예. 효율성의 극대화로 보이지만 불안하다. 무너지면 회복불능, 벼랑끝이다.
이 가을 히어로즈 야구의 성패는 불펜의 '핵' 조상우가 쥐고 있는 것 같다. 고졸 3년차 우완 조상우(21)는 올시즌 히어로즈의 가장 믿음직한 불펜 투수다. 선발 실패 후 불펜으로 돌아온 선배 한현희(22), 최근 몇 년간 부동의 마무리로 뛴 손승락(33)을 제쳤다. 시속 150km 묵직한 돌직구. KBO리그 최고 수준이다. 시즌 후반에도 종종 그랬지만, 지금 조상우는 히어로즈 마운드의 버팀목이다. 필승조를 넘어 반드시 잡아야할 경기를 책임지는 '마지막 보루'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조상우는 성공과 실패를 차례로 맛봤다. SK 와이번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선발 앤디 밴헤켄, 손승락에 이어 등판해 3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5대4 끝내기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3-3에서 등판해 10회까지 버텨줬다. 투구수 49개. 내일이 없는 승부에서 조상우는 든든한 승부사였다.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 양 훈, 손승락, 한현희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조상우는 2이닝 동안 48개의 공을 던졌다. 혼신의 투구를 이어갔으나 1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동점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결국 히어로즈는 고졸 루키 김택형(19)이 연장 10회에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3대4 역전패를 당했다.
두 경기 모두 화끈한 타격전이 아닌 마운드가 주도하는 밀도높은 투수전이 전개됐다. 이 팽팽한 승부에서 조상우는 '승부의 키'를 쥐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상우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히어로즈가 확실하게 리드를 잡지 못하고 경기가 늘어지면서 투구수, 투구이닝이 늘어났다. 조상우가 벤치의 기대에 부응해 한계를 이겨내고 임무를 수행하면 좋겠으나 쉽지 않은 일이다. 프로 3년차 조상우에게 오승환을 기대하는 건 아직 이르다. 더구나 주어진 환경이 너무 빡빡하다.
팀 상황에 따른 결정이긴 하겠지만 조상우에게 과도한 부담이 가는 '올인 야구'가 당일 성공 여부를 떠나 독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이긴다고 해도 데미지가 너무 크다. 히어로즈의 이번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는 11명의 투수가 들어가 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