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후 제주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을 채 나눌 새도 없이 서포터스 앞으로 뛰어갔다. 삼삼오오 모여 서포터스가 던져준 휴대폰을 잡고 성남-인천의 경기를 지켜봤다. 침묵의 3분이 흘렀다. 마침내 탄천종합운동장의 종료 휘슬이 울렸고, 그제서야 참았던 환호를 터뜨렸다. 한켠에서 성남-인천전을 보고 있던 조성환 감독도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선수단, 코칭스태프, 구단 프런트, 서포터스가 함께 모여 승리의 사진을 찍었다. 제주의 극적인 드라마는 그렇게 한장의 추억이 됐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았다. 구단 프런트 중 한 명이 경기 당일 새벽 득남을 했다. 구단 직원들끼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우리가 상위 스플릿으로 갈 수 있는 좋은 징조"라며 덕담을 건넸다. 추석부터 지난 경기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조성환 제주 감독은 모처럼 좋은 꿈을 꿨다고 자랑했다. 경기 전 만난 조 감독은 "전날 인천이 0대1로 지는 꿈을 꿨다. 내 꿈대로만 되면 좋겠다"고 웃었다. 좋은 꿈 때문인지 조 감독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는 "나부터 말이 많으면 선수들이 부담을 갖는다. 선수들 스스로 이번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선수들을 믿겠다"고 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초반부터 제주의 득점이 불을 뿜었다. 전반 16분만에 2골을 넣었다. 모두 김상원의 작품이었다. 김상원은 이날 조 감독의 비밀병기였다. 조 감독은 전북의 막강 공격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윙백이던 김상원을 윙포워드로 전진배치했다. 김상원은 2골을 넣으며 조 감독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그러나 후반 들어 전북의 맹공에 흔들렸다. 이근호에게 2골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했다. 기자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구단 직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조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큰 전술 변화 대신 선수들에게 경기를 맡겼다. 그 사이 성남이 한 골을 넣었다. 제주가 넣으면 그룹A행이었다. 조 감독은 "수석코치가 성남의 득점 사실을 알려줬다. 우리가 이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잊었다"고 했다. 결국 후반 43분 로페즈의 극적인 결승골이 터졌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이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조 감독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구단 프런트들은 여기저기서 성남-인천의 경기 중계를 지켜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결국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다. 선수들이 라커룸에 모여 여흥을 즐겼다. 가장 많이 나온 얘기는 역시 '휴가'였다. 조 감독은 "오늘처럼 우리 선수들이 예뻐보인 적이 없었다. 충분한 휴가를 줄 것이다. 오늘은 내 지도자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될 것 같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제주=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