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이 선수를 놓고는 가정 좀 해야 할 듯 하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의 타자. 이호준은 2012년 말 9구단 NC가 구단 1호 FA로 영입한 선수다. 당시 계약 조건은 3년 간 20억원. 은퇴를 앞둔 노장에게 구단은 과감한 베팅을 했다. 그런데 이호준의 영입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생애 첫 FA 자격을 얻은 2012시즌, 타율 3할에 18홈런 78타점을 올렸지만 NC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는 반신반의했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과연 어떤 활약을 하겠느냐는 냉정한 시선이 상당했다. 하지만 SK에서부터 그를 지켜본 박승호 코치가 적극 추전 했다. 우왕좌왕 하기 바쁜 신생팀의 라커룸 리더가 될 수 있다는 확실을 갖고 있었다.
박 코치의 눈은 정확했다. NC가 빠르게 강 팀 반열에 올라선 건 '리더' 이호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리더 한 명이 갖고 있는 가치는 에이스 못지 않다. 후배들이 기댈 수 있는, 때론 뒤에 숨을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팀이 하나가 된다. NC 관계자는 "당시 박승호 코치가 추천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팀에 지금 이호준이 없었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며 "이 선수에겐 안타나 홈런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코칭스태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지금 NC의 모습을 만들어 준 선수"라고 말했다.
그런데 라커룸 리더는 올해 필드 리더까지 돼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지난 15일 창원 kt전에서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시즌 100타점 고지를 밟았다. 7-1로 앞선 6회 2사 만루에서 홍성무를 상대했고, 시즌 20홈런을 그랜드슬램으로 장식했다. 이로써 NC도 KBO리그 최초로 100타점 타자를 3명이나 배출했다. 이호준이 무려 11년 만에 100타점을 넘어서며 테임즈(119타점) 나성범(107타점) 등 리그 최고의 중심 타선을 앞세워 삼성의 1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호준은 NC 유니폼을 입은 첫 해 126경기에서 타율 2할7푼8리 20홈런 87타점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122경기에서 23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주장 완장을 후배 이종욱에게 넘겨 준 뒤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올 초 김택진 NC 구단주는 "이호준 선수가 다시 한 번 (2017년 시즌 후) FA에 도전할 수 있도록 올해도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신년 메시지를 보냈는데, 지금의 분위기라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