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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아닌 10번, 손흥민의 데뷔전이 아쉬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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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데뷔전을 치른 '400억원의 사나이' 손흥민(23·토트넘)에 대한 영국 현지 언론의 평가다. '손세이셔널' 손흥민이 마침내 EPL에 첫 선을 보였다. 손흥민은 13일 오후 9시30분(한국시각) 영국 선덜랜드 스타디움오브라이트에서 열린 선덜랜드와 EPL 5라운드 원정경기(1대0 토트넘 승)에 선발 출전했다. 손흥민은 후반 16분 안드로스 타운젠드와 교체될때까지 61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아쉽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2차례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유효슈팅은 없었다. 손흥민은 "처음 경기에서 뛰게 돼 놀라웠다. 하지만 분명히 더 잘할 수 있다"며 데뷔전 소감을 밝혔다.

눈여겨 볼 것은 토트넘의 손흥민 활용법이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최근 영국 국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2선 어디서든 뛸 수 있는 손흥민을 다각도로 활용하겠다"고 한 바 있다. 손흥민의 1차 포지션은 오른쪽 날개였다. 손흥민은 레버쿠젠에서 왼쪽을 주로 담당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토트넘의 2선 공격수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인 나세르 샤들리의 위치를 그대로 왼쪽에 두고, 양 발을 자유롭게 쓰는 손흥민을 오른쪽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포지션은 의미가 없었다. 사실상 프리롤에 가까웠다. 히트맵을 보면 이날 손흥민 움직임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손흥민은 오른쪽 대신 중앙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7번(측면 미드필더)'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이 '10번(섀도 스트라이커)'처럼 뛴 셈이다.

포체티노 감독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토트넘의 팀 사정을 알 필요가 있다. 토트넘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무사 뎀벨레가 부상으로 이탈해 있다. 공격진에서 볼을 돌릴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득점력 부재로 고민 중인 포체티노 감독은 슈팅력이 좋은 손흥민을 '원톱' 해리 케인 뒤쪽에 포진시켜 득점력을 극대화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실패였다. 손흥민은 중앙에서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손흥민은 세밀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넓은 공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밀집된 공간에서는 더더욱 손흥민의 장점을 살리기 힘들다. 함께 2선에 포진한 델레 알리와 동선마저 겹치며 손흥민의 활동 반경은 더욱 줄어들었다. 생소한 리그, 생소한 위치, 생소한 역할을 부여받은 손흥민은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토트넘에서 가장 적은 34번의 볼터치 기록이 이날 손흥민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 지난 일주일간 훈련을 통해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손흥민은 데뷔전부터 팀의 세트피스를 책임졌다. 전담키커로 나섰다.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킥 자체는 날카로웠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과 함께해 매우 행복하다"며 "손흥민은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쳤다. 손흥민은 우리팀에게 있어 매우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손흥민의 데뷔전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걱정했던 템포에서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고, 개인기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일단 팀에 녹아드는 것이 급선무다. 10번이든, 7번이든 어떤 위치에서도 제 역할을 해야한다. 그게 토트넘이 손흥민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한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