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의 거침없는 상승세에 방점을 찍은 건 김영민(28)이다. 터질 듯 터지지 않아 애간장을 태우던 오른손 강속구 투수. 구단 창단 최다 연승 타이기록인 8연승에 앞장 선 건 예상을 깨고 김영민이었다.
김영민은 5일 인천 SK전에 선발로 나와 9이닝 동안 5피안타 2개의 4사구, 3탈삼진으로 7대0 승리를 이끌었다. 2013년 8월10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 756일 만에 선발승을 따냈고, 2007년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래 처음 완봉승을 따냈다. 특히 병살만 4차례 유도해 투구수(99개)도 많지 않았다. 5위 싸움에 갈 길 바쁜 8위 SK는 2,3,4,6회 김영민이 던진 낮은 코스의 공에 속절없이 2아웃을 당했다. 넥센 야수들은 3회 연속 5안타로 4점을 뽑고 6회에 이미 7-0까지 스코어를 벌려 완봉승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실 김영민은 올 스프링캠프에서 투수진 MVP로 봐도 무방할 만큼 엄청난 공을 뿌려대 팀에서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투구폼을 미세하게 바꾸며 스피드가 부쩍 늘었고 공 끝도 묵직해 장차 마무리로 써도 되겠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다 일각에서는 "선발로 써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했다. 구위는 물론 체력이 좋기 때문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이에 "그렇게 되면 불펜에 조상우밖에 없다. 김영민이 필승 계투조에서 공을 던지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늘 선발 전환에 대한 계획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규 시즌에 돌입하자 캠프 때의 모습은 사라졌다. 한 때 선발 전환을 제안했던 이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는 필승 계투조는 물론 추격조에서도 제 몫을 못했다. 사령탑과 팬들의 속만 타 들어갔다. 구단 내부에서는 "멘탈이 문제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좋은 공을 갖고도 활용할 줄을 모른다는 의미였다. "늘 볼카운트가 불리하다. 2B1S, 3B1S가 다반사다. 타자는 직구만 노리고 있다. 누가 못 치겠는가." 6월4일 목동 한화전에서 2-1로 앞선 7회 등판해 1이닝 5실점으로 팀 승리를 날려먹은 그는 급기야 다음날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그러나 삭발 효과도 그리 크지 않았다. 마운드에서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못해 기 싸움에서부터 밀린 상태로 공을 던졌다. 결국 사령탑이 칼을 빼 들었다. 선발로 8승을 거둔 한현희를 다시 불펜으로 돌리고 김영민을 선발로 돌려 변화를 줬다. 염 감독은 "(김)영민의 선발 전환에 대해 전반기에도 투수 코치들과 얘기를 했다. 당시에는 당겨쓰기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한현희에 김택형도 있다"면서 "150㎞의 빠른 공이 있으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김영민이 일을 냈다. 8월17일 목동 롯데전 3⅔이닝 4실점, 8월17일 잠실 LG전 4⅔이닝 3실점(1자책), 8월30일 광주 KIA전 4이닝 1실점 등 점차 적응을 하더니, 5일 SK 타자들을 9이닝 동안 완벽히 봉쇄했다. 최근 손승락이 1군 엔트리에서 빠져 있는 넥센은 늘 길게 던져주는 토종 선발을 발굴하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김영민이 시원하게 '원맨쇼'를 펼쳤다. 손혁 투수코치도, 동료들도 벤치에서 박수를 치기에 바빴다.
이날 김영민은 문제가 됐던, 불리한 카운트에서의 승부가 적었다. 31명의 타자를 상대해 2B1S, 3B1S, 풀카운트가 2번씩밖에 없었다. 오히려 2S, 1B2S가 나란히 4번씩으로 시종일관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역시나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집어 넣은 결과다. 31명 중 21명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져 68%의 비율을 찍었다. 통상 KBO리그 정상급 선발이 60% 안팎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기록하는데, 김영민이 이를 뛰어 넘었다.
일전에 넥센의 한 관계자는 "김영민의 멘탈은 조상우와 비슷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리그 정상급 셋업맨으로 성장하고 있는 조상우도 알고 보면 멘탈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 팀 선수 중 최고의 멘탈은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였다. 나머지 선수는 거의 비슷하다"며 "(조)상우는 경기에서 좋은 기억이 많기 때문에 그 멘탈로 버틴다. 반면 (김)영민이는 업앤 다운이 심해 스스로 무너지는 케이스다. 터닝포인트만 찾으면 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SK전에서 거둔 생애 첫 완봉승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늘 부족했던 김영민의 야구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줄곧 문제가 됐던 '멘탈'도 이번 경기에서 느낀 바가 클 것이다. 넥센은 앞으로 김영민이 6이닝씩만 책임져 준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