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삼성의 류중일 감독도 고민은 있다. 야수 중 마땅한 오른손 대타 카드가 없다는 점, 마운드에는 롱릴리프 역할을 해줄 투수가 없다.
지난해에는 김태완이 승부처마다 대타로 요긴한 활약을 했다. 65경기에서 타율 3할4푼7리(95타수 33안타)에 2홈런 15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시즌 막판이 돼서도 1군에 올라오기가 쉽지 않다. 류 감독은 "왼손 대타 카드는 많은데, 오른손은 없다"며 김태완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롱릴리프 역할은 왼손 차우찬이 주로 해왔다. 선발이 일찍 무너지거나 접전이 계속 되는 경기 중반 2~3이닝은 너끈히 책임져줬다. 그런데 올해는 선발로 완벽히 정착했다. 배영수가 한화와의 FA 계약으로 팀을 떠나자 캠프에서 경쟁을 통해 5선발 자리를 따냈다. 류 감독은 "차우찬이 중요한 경기마다 선발로 잘 던져주고 있지만, 불펜에 길게 가는 중간 투수가 없어 아쉽다"도 말했다.
그러던 중 오른손 정인욱이 모처럼 호투를 했다. 지난 1일 창원 NC전. 1위 자리를 위협받는 가운데 그는 7-6으로 앞선 연장 10회말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안타 없이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당초 류 감독은 우타자인 모창민만 상대하고 좌타자인 박민우, 김준완 때는 왼손 박근홍을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정인욱의 공이 좋아 그대로 밀어붙였다. 밋밋하던 슬라이더가 예리하게 들어갔고, 직구도 148㎞까지 나왔다. 프로 데뷔 후 첫 세이브. 류 감독은 "그날처럼만 던지면 불펜에서 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 선발이 빨리 무너졌을 때 정인욱을 올릴 예정이다"며 "정인욱밖에 쓸 투수가 없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상무에서 제대한 정인욱은 캠프에서부터 구속이 올라오지 않아 줄곧 2군에서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어깨 통증까지 느끼며 재활에만 몰두한 시간도 꽤 길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대구 LG전에서 2이닝 2피안타 무실점 투구로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1일 창원 NC전은 자신감을 찾은 계기다.
정인욱도 "긴장을 조금 했지만, 감독님이 원래 한 타자만 상대하고 교체한다고 하셔서 더 세게 던졌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웃은 뒤 "컨디션은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제대하기 전 아파서 많이 못 던졌는데, 그것 때문에 부진했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며 "기회만 주시면 던지겠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감독님이 써주실 것이다. 어느 자리가 됐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