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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앞둔 김현수의 깨달음, 헛된 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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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보다는 지금까지 왜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최선을 다했고, 또 배우고 노력하고 도전했기에 다시 오늘과 같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두산 베어스 김현수가 1일 잠실서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한 말이다. 5년만에 20홈런 고지에 오른 소회를 밝힌 것이다. 이날 김현수는 3회말 2사후 두 번째 타석에 등장해 SK 선발 박종훈의 120㎞짜리 커브를 잡아당겨 오른쪽 파울 폴대 안쪽으로 살짝 넘어가는 홈런을 터뜨렸다. 3경기 연속 대포를 날리며 지난 2010년 이후 5년만에 시즌 20홈런을 달성한 것이다.

김현수는 2006년 신고선수로 입단해 2007년 주전을 꿰차며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2008년 타격 1위를 차지했고, 2009년에는 타율 3할5푼7리, 23홈런, 104타점으로 최고의 왼손 타자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이후 김현수는 내적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자의반 타의반' 홈런과 타율 사이에서의 고민이었다. 장효조 이후 최고의 왼손 타자라는 칭찬을 받고 있던 김현수는 홈런에 대한 욕심도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m88의 큰 키에 펀치력 또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9년 시즌이 끝난 후 김현수는 타격폼을 바꿨다. 타격시 오른쪽 발을 들고 스윙 궤적을 크게 하는 폼이었다. 정확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홈런수를 늘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실제 김현수는 2010년 지금까지도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24개의 홈런을 때렸다. 타율 3할1푼7리에 타점도 89개를 올려 중심타자로서 제 몫을 했다. 그렇지만 김현수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홈런치는 것은 좋은데 타율이 떨어지는 것 역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정한 홈런수와 타율을 유지할 수 있는 타격 마인드와 폼을 찾는데 골몰했다. 그러다보니 혼란스러워지고 타자로서의 정체성도 희미해져 갔다.

2011년 타율은 3할1리로 더 떨어졌고, 홈런은 직전 시즌의 절반 수준인 13개로 감소했다. 당시 사람들은 "김현수가 이도저도 아닌 타자가 돼가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안타 기계' 김현수의 '슬럼프'는 2012년 생애 첫 3할 미만 타율(0.291)로 이어졌다. 홈런은 7개, 타점은 65개에 그쳤다. 최악의 시즌이었다.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성장하고 싶었던 그에게 닥친 위기의 시즌이었다. 김현수가 이날 SK전을 마치고 밝힌 소회는 이 시기를 두고 한 것이다.

그 즈음 김현수는 '욕심부린다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3년 타율 3할2리를 치며 3할 타자로 다시 태어난 김현수는 홈런과 타점도 각각 16개, 90개로 늘렸다. 당시 김현수는 "홈런은 치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치다보니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김현수의 강점은 어떤 코스의 공이라도 안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컨택트 능력이다. 그를 휘하에 뒀던 김경문, 김진욱, 송일수 감독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2014년 김현수는 타율 3할2푼2리, 17홈런, 90타점을 때리며 '김현수다운' 시즌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5년, 김현수는 제2의 전성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시즌 막판까지 절정의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까지 타율 3할2푼5리, 20홈런, 97타점. 지난해보다 더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타점 3개를 더 보태면 2009년 이후 6년만에 100타점 고지도 밟는다.

그는 "지금까지 왜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라고 했다. 올시즌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얘기이며, 동시에 힘들던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그의 타격을 보기 위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야구장을 찾고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