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고맙죠."
수화기 넘어 들리는 조성환 제주 감독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10년만의 첫 승리인만큼 당연했다. 제주는 29일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2대1로 이겼다. 2006년 3월 25일 이후 15경기(7무7패)만의 승리였다. 조 감독은 "이런 날도 있어야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웃은 뒤 "끝나고는 우승한 것 같은 기분이더라. 감독 부임했을 때보다 더 많은 축하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은 경기 후 나를 안아서 번쩍 들어주셨다"고 했다.
조 감독은 승리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는 "간절함을 담은 정신력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올 시즌 제주의 화두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이었고, 두번째가 서울전 승리였다. 조 감독은 취임 인터뷰에서 "반드시 서울을 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주는 올 시즌 두번의 서울전에서 모두 패했다. 삼세번이라고 했던가. 제주 선수단은 이번만큼은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벼르고 또 별렀다. 경기 2일전 선수들이 하나둘씩 숙소로 모였다. 고참들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 합숙이었다. 23일 광주전에서 자발적 삭발로 5경기 무승(1무4패)의 수렁에서 벗어난 선수단은 이번에는 합숙으로 의지를 다졌다. 조 감독은 "이번에 서울전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분위기가 남달랐다. 이기겠다는 의지가 훈련부터 느껴졌다"고 했다.
사실 제주는 이번 서울전을 준비하며 불안요소가 많았다. 강수일이 음주 파동으로 임의탈퇴됐고, 7골-9도움을 올린 로페즈가 경고누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조 감독은 "준비하면서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매일 반병씩 마셨다. 부담감이 컸다. 침대에 눕지도 못하겠더라. 책상에서 영상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새벽에 나가서 운동하는 생활을 계속했다"고 털어놨다.
조 감독은 고심 끝에 3-5-2 카드를 꺼냈다. 키 포지션은 미드필드였다. 송진형-윤빛가람-양준아는 제주가 자랑하는 트라이앵글이다. 기술만큼은 K리그 클래식 최고의 조합이다. 하지만 수비력에서는 항상 의문 부호가 붙는다. 조 감독은 이들을 믿었다. 송진형에게 서울 공격의 시발점인 오스마르 마크를 주문했다. 윤빛가람과 양준아에게는 몰리나와 다카하기 봉쇄를 맡겼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들은 서울의 막강 미드필드진을 무력화시켰다. 조 감독은 "경기 전에 책임감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가 올 시즌 서울을 상대로 5골을 먹었는데 그 중 4개가 세트피스였다. 세트피스 때 집중력을 잃지 말고, 미드필드에서 강한 협력 수비를 할 경우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송진형과 윤빛가람은 골까지 터뜨리며 조 감독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특히 송진형의 결승골은 의지가 만들어낸 득점이었다. 볼이 흐르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몸을 날렸고, 행운이 따라주며 결승골로 이어졌다. 조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다 열심히 뛰었다. 로페즈의 자리를 메운 정영총도 잘했고, 실수는 있었지만 강준우가 고참답게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송진형도 포기하지 않았고, 윤빛가람도 악착같이 수비를 해줬다. 팬, 프런트 등의 염원이 선수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 역시 간절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웃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