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넥센-SK전이 열린 목동구장. kt에 연이틀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넥센은 0-2로 뒤지던 9회말 상대 마무리 정우람을 두들겨 극적인 동점에 성공했다. 8회까지 4안타로 묶이다가 9회 한 이닝에만 4개의 안타를 연속해서 쳐냈다. 하지만 10회초 다시 1점을 내줬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4번 박병호가 귀중한 동점포로 추락하는 팀을 살렸다. 어깨 통증을 털고 최근 1군에 복귀한 박희수(SK)의 몸쪽 직구를 시즌 44호 좌월 솔로포로 연결했다.
올해 박병호는 그런 존재다. 장타가 필요한 순간 어김없이 대포를 가동하는 놀라운 능력을 뽐내고 있다. 누구보다 많이 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때린다. 이 같은 특징은 44개의 홈런을 분석해 보면 더 뚜렷이 나타난다. 홈런 평균 비거리 1위(123.4m), 4년 연속 30홈런 선점. 국내 선수 최초의 4시즌 연속 100타점 등 이미 쌓은 업적에 가렸을 뿐, 올 시즌 박병호를 논하며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날 현재 박병호는 솔로포가 21개, 2점 홈런 17개, 3점 홈런 4개, 만루 홈런이 2개다. 중요한 것은 점수차에 따른 홈런 개수인데, 동점일 때 리그에서 가장 많은 11개의 홈런을 폭발했다. 나성범(NC)이 공동 1위, 브라운(9개)과 최정(8개·이상 SK), 최형우(7개·삼성)가 그 뒤다. 박병호는 지금껏 0-0이던 1회 첫 타석에서 4방의 대포를 가동했다. 모두 투런 홈런으로 확실한 기선 제압을 해줬다. 경기 막판 팀 승리와 직결되는 대포도 있었다. 지난 5일 KIA전. 2-2이던 8회 최영필로부터 결승 솔로포를 폭발했다. 역시 KIA전이던 5월8일에는 4-4이던 9회 한승혁을 상대로 끝내기 솔로 아치를 그렸다. 각각 볼카운트는 3B1S과 2B. 유리한 카운트에서 풀스윙을 한 결과였다.
그는 1점 차로 뒤지고 있을 때 나온 홈런도 7개나 된다. 특히 박희수에게 친 홈런을 포함해 이 달에만 벌써 3개다. 지난 11일 NC전, 박병호는 5-6이던 5회 이민호의 실투를 통타해 전세를 뒤집는 우중월 투런 홈런으로 연결했다. 17일 롯데전에서는 0-1이던 3회 무사 만루에서 언더핸드 이재곤의 직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그랜드 슬램을 폭발했다. 이에 앞서 6월10일 KIA전에서는 2-3이던 8회 상대 마무리 윤석민으로부터 동점포를 쏘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넥센은 박병호가 총 7방의 홈런을 기록한 덕분에 1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6번이나 뒤집고 승리를 따냈다. 막강한 4번 타자의 힘이다.
근소한 리드에서 나온 쐐기포의 가치도 엄청나다. 그는 1점 앞선 상황에서 4방, 2점 리드에서 3방, 3점 리드에서 역시 3방의 홈런을 터뜨렸다. 대표적인 경기가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둔 7월14일 삼성전이다. 이날 류중일 삼성 감독은 우천 취소로 등판이 밀린 장원삼을 불펜으로 투입했다. 전반기 막판 선보인 총력전이었다. 하지만 박병호는 6-5로 앞선 8회 장원삼을 상대로 쐐기 투런포를 가동했다. 상대의 기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한 방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박병호 앞에서 영양가를 논해선 안 된다. 그는 홈런 한 방이 가장 절실한 '7회 이후 & 2점 이내' 승부에서도 10개 구단 타자 중 가장 많은 7개의 축포를 쏘아 올린 타자다. 아울러 린드블럼(롯데) 피가로(삼성) 양현종(KIA) 윤성환(삼성) 유희관(두산) 등 상대 에이스 공략에도 성공했다. 소속 팀 넥센도 박병호가 홈런을 쳤을 때 30승1무13패로 승률이 좋다. 그를 보며 후배들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은 걸 배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사상 첫 홈런왕 4연패에다 2년 연속 50홈런을 노리는 박병호가 있어 "참, 행복하다"고 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박병호 점수차별 홈런 개수(2015.8.20일 현재)
동점 11개=1점 리드 4개=2점 리드 3개=3점 리드 3개=4점 리드 3개=5점 이상 리드 6개
1점 열세 7개=2점 열세 3개=3점 열세 1개=4점 열세 1개=5점 이상 열세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