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곧바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4일 새벽 0시5분 서울 의정부 교도소 출소 직후 서울 서린동 SK그룹 사옥에 1시간 정도 들린데 이어 15~17일 연이어 회사로 나오는 등 나흘 연속 출근 도장을 찍었다. 2013년 1월 31일 횡령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지 2년7개월여 만에 최 회장이 경영 현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수감생활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어 일정기간 휴식을 취할 것이란 재계의 전망과 전혀 다른 움직임으로 최 회장은 장기 부재로 인해 그동안 미뤄졌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함과 동시 이완된 SK그룹 조직 추스르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급한 그룹 현안 처리 위해 휴일에도 '강행군'
최테원 회장은 지난 14일 새벽 출소하자마자 사옥에 들려 그룹 핵심 경영진과 경영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이지만 최 회장과 경영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그룹 최고경영진들이 모두 집결했다.
최 회장이 이처럼 출소와 동시에 '철야 근무'에 나선 것은 오랜 공백으로 신사업 추진 등과 같은 그룹의 굵직한 현안을 빠른 시일 내 처리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출소 직후 "긴 경영 공백으로 그룹의 주요 현황 등에 대해 파악이 덜 돼 있다"며 "SK그룹의 현황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며 시간을 갖고 가능한 빨리, 최선을 다해 그룹의 주요 현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SK그룹은 최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인해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공격경영에 나서지 못했다. 굵직한 사업 현안의 처리 과정에서 총수의 결단이 필요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원격 경영을 통해 사업 현안을 결정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빠른 의사결정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SK그룹은 최 회장 부재 이후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필수 항목인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비슷한 기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LG그룹과 롯데그룹 등 재계 순위 5위권의 기업들이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투자를 늘렸던 것과 비교된다.
SK그룹의 투자는 2011년 이후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였다. 공격경영에 나서지 못하다 보니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보여 왔다. 문제는 불규칙적인 투자로 인해 신성장 사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신성장동력 사업은 오랜 기간 인큐베이팅을 거쳐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며 "단기간에 실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K그룹은 최근 대내외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례로 SK그룹은 석유화학 부분과 반도체 부분을 그룹의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최 회장의 경영공백 이후 핵심 사업을 위한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이 같은 결과는 경영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정유, 화학, 통신, 건설 등 대부분 주력 사업들이 경기 불황과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등 깜짝 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 증설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만큼 향후 실적의 방향성에는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올해 상반기의 경우 KT렌탈 인수전,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 등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시며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도 실패했다.
17일 첫 공식 업무를 시작한 최 회장이 출소일인 지난 14일은 물론이고 휴일인 지난 15,16일에까지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룹 업무 현황을 보고받은 것은 대규모 투자 등 경영전략 수립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반도체·석유화학 등 대규모 투자로 신성장동력 확보
앞으로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에 대한 증설 투자에 가장 먼저 나설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최 회장이 그룹 내부 반대에도 인수에 나선 기업인 동시에 가장 빠르게 경영투자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군이기 때문이다. SK그룹이 최근 SK하이닉스 경기 이천공장에 최 회장 집무실을 새로 마련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경영에 복귀하면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현장을 직접 들러 현안을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17일 정철길 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위원장은 투자가 시급한 반도체 분야에서 향후 신규 공장 2곳을 완공할 때까지 46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최태원 회장에게 보고했다. SK그룹은 이달 말로 예정된 경기 이천 M14 반도체 공장 준공식에서 맞춰 최 회장이 이같은 투자안을 직접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착공한 M14 반도체공장은 반도체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은 새 공장이다. M14 공장은 기존 M10 생산라인을 대체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예상된다. 최 회장은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할 경우 중국 시노펙과 같은 대형 유화업체와 합작을 통해 석유화학 부문의 경쟁력 회복이 수월하다.
자동차 배터리 사업 확대를 위한 사업 확장도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저유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구조적인 사업 재편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당장 자원 개발 투자와 합작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이 필요하다. SK이노베이션은 자동차 배터리 사업 등을 앞세워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동북아 석유화학업체와 연계해 '동북아 얼라이언스'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최 회장 구속 전 SK그룹의 IT 계열사의 투자는 플랫폼에 집중됐다. SK텔레콤과 SK플래닛이 나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IT 패러다임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 사물인터넷(loT)이다.
SK그룹의 IT 투자 형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는 최 회장 복귀 이후가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SK C&C와 SK플래닛 등 IT계열사들의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진출 움직임이다. 두 회사는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사로 전환한 SK C&C는 금융 IT 기술력을 바탕으로 솔루션 구축에 집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SK플래닛도 사업 진출여부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을 알려졌다.
사물인터넷과 헬스케어, IT기기 등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기반의 핵심 콘텐츠 육성을 위해 과감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이 총수의 경영 공백으로 대형 M&A 등 좋은 사업 기회를 놓쳤고 신규 투자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오너 복귀와 동시에 대대적인 공격경영에 나설 수 있는 만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에 그룹 조직개편과 함께 인적 쇄신 나설 듯
투자 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최 회장의 경영복귀가 본격화되면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역할 정리가 필요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이 최 회장의 경영공백을 대비하기 위해 2012년 12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강조하며 내세운 집단의사결정구조다. 수직적 구조 대신 수평적 구조를 내세우며 총수 개인에 집중됐던 경영 관련 의사결정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의 경영복귀가 이뤄질 경우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역할 조정은 불가피 한 상황"이라며 "외형은 유지하겠지만 연말 인사시즌 때 새로운 조직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초 문덕규 전 SK네트웍스 사장의 교체과정에서 항명논란이 빚어지는 등 부재중에 크게 이완됐던 내부 조직을 추스르는데도 최 회장은 상당한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문 전 사장은 2013년 3월 SK네트웍스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연말 인사에서 2년 만에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문 전 사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 김창근 의장에게 임기 중 퇴진해야 하는 사유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냈고, 이 이메일을 SK네트웍스 직원들에게 다시 전송했다. 그러면서 SK그룹 최고경영진간의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문덕규 전 사장은 2003년 소버린사태 이후부터 SK그룹 핵심 경영진 중 하나였다"면서 "그런 인물이 또 다른 핵심 경영진인 김창근 의장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출소한 최태원 회장이 사태 파악을 한 뒤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