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조끼 입혀라."
이득춘 배드민턴대표팀 감독은 2015년 인도네시아 세계개인선수권대회를 끝낸 뒤 코치진 미팅에서 이렇게 지시했다.
납조끼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지옥훈련'을 상징하는 공포의 단어다.
고생 끝, 또 고생 시작이다. 한국 배드민턴이 강행군으로 다시 시작한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 2개의 아쉬운 성적때문 만은 아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노출된 체력적 부족분을 채우기위해서다. 당장 9월에 잇달아 열리는 일본오픈과 코리아오픈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휴식은 사치다.
그래서인지 한국 대표팀은 1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자마자 태릉선수촌으로 곧장 소집됐다. 1주일간 휴식에 들어가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일본오픈(9월 8∼13일) 개막 이전 3주일 동안 맹훈련 계획도 수립했다. 휴식은 사치다. 3주일간 외출·외박도 금지됐다.
공포의 대상 납조끼도 다시 꺼내입기로 했다. 납조끼는 납덩어리가 5∼10㎏ 가량 장착된 조끼 모양의 트레이닝 장비를 말한다. 이걸 입고 훈련을 하면 제 아무리 체력 좋은 남자선수라도 20∼30분 만에 혀를 빼문다. 달리기 훈련을 할 때 모래주머니를 차는 것과 비슷하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납조끼의 중압감은 훨씬 가혹하다. 이 무더위에 납조끼 명령이 떨어지면 일단 선수들은 '죽었다'고 복창해야 하다.
납조끼를 입고 담당 코치가 쳐주는 공을 받아 내는 수비훈련부터 공격훈련, 셔틀런 등 '죽는' 방법은 다양하다. 강경진 대표팀 코치는 "납조끼 훈련을 40∼50분 한세트를 받고 나서 조끼를 벗으면 날아갈 것처럼 가뿐하다. 고통스럽지만 단기간에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이 끝나기 무섭게 납조끼, 외출·외박 금지 조치가 떨어진 것 만해도 한국 배드민턴의 남은 훈련 강도가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선수들은 세계선수권을 통해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잘 알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이용대는 "다들 내년 올림픽을 바라보는데 어차피 각오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채찍'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감독이 선수들 몰래 준비하는 '당근'이 있다. 십전대보탕이다. 이 감독은 지인이 보신용 재료를 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곧바로 이를 찜해놓고 사비를 들여도 좋은 십전대보탕을 넉넉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여자단식 성지현이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패한 뒤 면담에서 "너무 힘이 들었다"고 토로한 게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이 감독은 성지현뿐만 아니라 필요한 선수에게 십전대보탕을 나눠 줘 기력을 보충하도록 할 예정이다. 십전대보탕으로 다스리는 지옥훈련. 한국 배드민턴이 어떤 효능을 보여줄지 궁금하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