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선발진의 역습이 시작된 것일까.
염경엽 넥센 감독은 "냉정히 말해 올해도 실패"라고 했다. 2013년 넥센 지휘봉을 잡은 뒤부터 부단히 애쓴 5인 선발 로테이션 정착. 이번에도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염 감독은 최근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투구폼 변신 등으로 좋은 구위와 컨디션을 보인 투수가 여럿 있었다"며 "하지만 결국 선발 야구는 성공하지 못했다. 다 감독 탓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민과 자책은 100경기를 넘어가면부터 더 심해졌다.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에서 최소 5이닝을 맡기고 내보낼 투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8일 대구 삼성전이 우천으로 취소됐다. 예정에 없던 '월요일' 경기가 편성되며 8연전을 치러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그 간 일주일에 6경기를 해도 늘 선발때문에 머리를 싸맸던 염 감독. 누구를 내야 하나 걱정부터 들었다. 또 "만약 선발이 3이닝 만에 강판된다면, 그 다음 불펜 운영은" 등의 최악의 시나리오만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 내내 팀의 발목을 잡던 토종 선발진이 마침내 벤치의 기대에 부응했다. 지난 10일 '월요일' 경기에서 보인 금민철의 호투는 염 감독이 "팀을 살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당시 상대 선발은 강속구 투수 피가로였다. 금민철은 이번이 세 번째 등판한 날이었다. 누가 봐도 삼성의 우세가 점쳐지는 맞대결. 하지만 금민철이 5⅔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볼넷 3개 내주는 동안 삼진을 6개 잡았다. 넥센의 12대3 대승. 그는 지난해 5월17일 롯데 전 이후 1년 2개월여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만약 넥센은 이날 패했다면 최악의 경우 8연패도 가능해 보였다. 이미 9일 삼성에 패했고, 다음 상대는 NC-한화-롯데였다. NC는 만날 때마다 기 한번 못 펴고 무릎 꿇는 상대. 한화도 새 외국인 선수 로저스가 합류한 뒤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금민철의 귀중한 1승으로 팀 분위기가 반전됐다. 연패로 NC를 만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이 때문에 염 감독도 "잘 던진 금민철은 앞으로도 계속 선발로 던진다"고 두터운 믿음을 보냈다. 설령 16일 목동 롯데전에서 부진한다고 해도, 당분간 기회는 줄 전망이다. 그만큼 삼성전에서의 호투는 임팩트가 강했다.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문성현의 피칭 내용도 염 감독의 막힌 가슴을 뚫어줬다. 그는 지나 15일 롯데전에서 6이닝을 3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삼진은 2개 밖에 없었지만, 안정된 제구력이 인상적이었다. 문성현은 롯데전 이전까지 총 9차례 선발 등판해 평균 이닝이 4⅓이닝이었다. 6이닝을 3자책 이하로 막는 퀄리티스타트도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불펜에서 던졌을 때 피안타율이 1할5푼8리로 나쁘지 않았지만, 선발일 때는 3할1푼8리로 치솟았다. 염 감독은 문성현이 선발로 나가는 날, 불펜을 일찌감치 가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이닝당 14.2개의 공만 던지는 경제적인 투구로 한 방 능력을 갖춘 상대 타선을 효과적으로 잠재웠다. 뜬공(5개) 보다 땅볼(8개) 아웃이 많은 점에서 보듯 낮은 코스에도 공을 던졌다. 결론적으로 필승계투조의 난조만 없었다면 약 1년 만에 선발승을 거둘 수 있었던 문성현. 개인적으로 아쉬움 속에 그라운드를 빠져나갔지만 팀은 금민철에 이어 문성현의 가능성도 보며 남은 시즌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