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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남북대결의 역사 '환희와 아픔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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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북한 축구가 2015년 동아시안컵에서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게 됐다.

만약 한국 남녀가 동반 우승할 경우 축구 남북대결 역사에서 진귀한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축구 남북대결은 희비가 극명하다. 남자는 한국, 여자는 북한이 앞섰다.

우선 남자축구는 10개월 전 기분좋은 기억이 생생하다. 2014년 10월 2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남북대결이 펼쳐졌는데 한국이 1대0으로 승리하며 28년 만에 금메달 쾌거를 이뤘다.

당시 연장 후반에 짜릿한 결승골을 터뜨린 이가 지난 2일 중국과의 첫 경기(2대0 승)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임창우(23·울산)다. 이번 동아시안컵에도 임창우를 비롯한 아시안게임 주역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기대감을 높인다.

남자 A대표팀 역사로 돌아가면 한국은 통산 6승7무1패로 우위를 자랑한다. 가장 최근 치열하게 맞붙었던 게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시즌이었다. 남과 북은 2008년 아시아지역 3차예선부터 한조에 편성돼 이듬해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까지 월드컵 진출권을 놓고 겨뤘다. 당시 아시아지역 3차예선에서 남북한은 두 차례 모두 0대0 무승부를 했고, 최종예선서는 한국이 0대0 무승부 이후 1대0 승리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했다. 한국이 사상 첫 원정 16강에 성공한 반면 북한은 예선리그 3패로 돌아갔다. 최근 수원에서 뛰다가 일본 시미즈로 옮긴 정대세(31)가 북한의 간판 공격수였는데 조별예선 첫경기에 앞서 북한국가가 울려퍼질 때 흐느낀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남자축구 남북대결의 효시는 일제시대 경평축구대회다. 1929년 시작된 이 대회는 매년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가면 열렸으나 1935년 일시 중단된 뒤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서울 경기를 끝으로 분단의 역사와 함께 사라졌다.

이후 30여년간 축구교류가 없었던 남북한은 197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A대표팀 첫 대결을 펼친다. 이 대결은 연장 혈투 끝에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연출해 최고의 남북전으로 꼽힌다.

이후 남북한은 1980년 9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안컵 준결승(한국 2대1 승), 198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최종예선(한국 1대0 승), 1990년 중국 베이징 다이너스티컵(한국 1대0 승)에서 맞붙었다. 1990년 평양과 서울을 오고간 통일축구 때는 사이좋게 1승1패를 나눠 가졌다. 이때 평양에서 먼저 가진 경기서 1대2로 패한 게 유일한 패배기록으로 남았다.

여자축구의 남북대결 역사에서는 한국이 1승1무13패로 크게 열세다. 여자축구는 늦게 태동한 까닭에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부터 남북대결 역사가 시작됐다. 0대7 대패로 출발한 한국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까지 3연패를 하다가 2003년 아시아축구연맹(AFC)선수권에서 2대2로 비로소 연패를 끊게 된다. 이후 다시 2연패로 밀린 한국은 전주에서 열린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승리(1대0)를 수확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1대2로 패하는 등 한국 여자축구는 10년째 8연패에 빠져있다.

특히 오는 8일 대결하는 한국 윤덕여 감독과 북한 김광민 감독은 특이한 인연으로 다시 만난다. 1990년 통일축구 때 남북화해의 대결을 펼친 이들은 2013년 서울 동아시안컵에서 23년 만에 감독으로 대결했다. 당시 윤덕여호는 1대2로 패했는데 감독간 리턴매치가 또다른 관심사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