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이 얄궂다. 외나무 다리 혈투라 물러설 곳도, 피할 수도 없다. 정면 충돌만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승부에서 남과 북의 희비가 엇갈린다. 한국 축구가 사상 첫 동아시안컵 남녀 동반 우승을 노린다.
윤덕여호가 먼저 테이프를 끊는다. 여자대표팀은 8일 오후 6시 10분(이하 한국시각) 중국 우한스포츠센터에서 북한과 충돌한다. 피날레는 슈틸리케호의 몫이다. 남자대표팀은 같은 장소에서 9일 오후 6시 10분 북한과 격돌한다.
여자는 2005년 초대 챔피언에 오른 이후 10년 만의 정상 등극에 도전한다. 전선이 명확하다. 한국과 북한, 둘 중 한 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두 팀은 나란히 2연승을 기록 중이다. 북한이 골득실에서 앞서 1위(+3), 한국이 2위(+2)에 포진해 있다. 경우의 수는 단 하나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2013년 첫 우승한 북한은 2연패를 노리고 있다.
반면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남자는 복잡하다. 북한을 꺾으면 우승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2008년 이후 7년 만의 정상 고지를 밟는다. 동아시안컵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그러나 비길 경우 뒤이어 열리는 중국-일본전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만에 하나 북한에 패할 경우 우승은 물건너간다. 남자는 한국의 승점이 4점, 중국과 북한이 3점, 일본이 1점이다. 가장 분명한 시나리오는 슈틸리케호 또한 북한을 완파하는 것이다.
사상 첫 동반 우승,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먼저 무대에 오르는 윤덕여호는 5일 꿀맛 휴식을 취한 후 6일 훈련을 재개했다. 1차전에서 중국을 1대0으로 꺾고, 2차전에선 일본에 2대1로 역전한 상승세의 흐름이 그라운드에 투영되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수치에선 북한이 앞선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북한(8위)은 한국(17위)보다 9계단이나 높다. 역대 전적에서도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1대0으로 승리한 이후 10년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1승1무13패로 절대 열세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4강전에서도 1대2로 패해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도 2경기에서 7골을 터트리며 막강한 화력을 뽐내고 있다.
그래서 벼르고 또 벼른 일전이 남북대결이다. 윤덕여 감독은 "10년 만에 새롭게 우승에 도전한다. 이제 북한과 3차전만 남았다. 마지막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태극낭자들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슈틸리케호의 키워드도 사생결단이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결승전이 될 것"이라며 혈전을 예고했다. 태극전사들은 2009년 4월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6년 만의 남북대결을 치른다.
슈틸리케호는 1차전에서 환상적인 경기력을 자랑하며 중국을 2대0으로 제압했다. 하지만 2차전, 한-일전에선 1대1로 비기며 주춤했다. 선발 진용을 무려 8명을 교체하며 대대적인 실험을 펼쳤지만 일본을 저격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도 수확은 있다. 로테이션을 통해 중국전에 출전한 최정예 멤버를 풀가동할 수 있다. 전술의 핵인 이재성(전북)과 권창훈(수원)은 한-일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했고, 이정협(상주) 이종호(전남)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김승대(포항)는 쉬었다. 북한의 김창복 감독은 5일 "한-일전을 보니 중국전에서 골을 넣은 김승대가 안 나왔다. 활동량도 많고 위협적이더라. 우리와의 경기에 나올 것을 예상하고 수비를 준비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은 1차전에서 일본에 2대1로 역전승했지만, 2차전에서 중국에 0대2로 패했다. 한국과의 상대전적에서도 1승7무6패로 열세다. 한국 축구는 1990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1대2로 패한 이후 한 번도 북한에 지지 않았다. FIFA 랭킹도 한국(54위)이 북한(124위)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동아시안컵에서 첫 우승을 노리는 북한의 정신무장은 단단하다. 축구공은 둥글다.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꿈은 동색이다. 태극낭자와 태극전사들이 정상을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