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대비해 투수를 찾아야 한다."
야구는 흔히 '투수놀음'이라고 불린다. 비슷한 맥락의 야구계 금언도 있다. "타격은 믿을 게 못된다. 투수력이 안정돼야 순항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야구인은 없다. 그래서 모든 감독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게 바로 안정된 투수진을 구축하는 것. 기본적으로는 5명의 선발 로테이션을 굳건히 다진 뒤 이들을 도울 필승 불펜을 구성한다. 그리고 경기를 깔끔하게 끝내는 마무리까지 만들어놓으면 사실상 한 시즌 대비는 끝난다.
하지만 6개월 여에 이르는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벌어진다. 대표적인 돌발 변수가 바로 선수의 부상. 시즌 중에 주축 투수가 다치면 팀은 큰 위기에 빠진다. 이걸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에 따라 팀의 운명이 갈린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대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한화 이글스가 바로 이런 시기를 겪고 있다. 전반기에 승률 5할 마진에서 +4승을 거두며 단독 5위에 올랐을 때의 전력이 갑자기 반 이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선발 투수진에서 돌발 변수가 크게 생겼다. 외국인 투수 쉐인 유먼이 전반기를 끝으로 웨이버 공시되면서 빠졌고, 선발로 전환해 호투하던 안영명도 지난 22일 kt전 이후 어깨 통증으로 전반기 막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가끔 선발로 나왔던 송창식도 완전히 중간계투로 보직을 바꾼 상황.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선발 요원은 사실상 미치 탈보트와 배영수, 2명 뿐이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이런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알맞은 대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팀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까지 들 정도. 일단은 선발진을 확충해야 하는 게 '제1 과제'다. 더불어 점점 힘이 떨어져가는 필승계투진을 도울 새로운 전력을 찾는 데 두 번째 숙제다.
김 감독이 위기 의식을 갖고 대안을 찾는 데 전력하고 있는 건 28일 잠실구장에서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늘 해왔던 중요한 일정을 빼면서까지 투수진 조련에 나선 것. 보통 김 감독은 원정경기 때면 늘 특타 훈련을 직접 지휘한 뒤 야구장에 늦게 나온다. 평일 저녁 6시30분 경기의 경우라면 5시30분은 돼야 야구장으로 온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김 감독은 평소보다 빠른 오후 5시경 야구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3루쪽 불펜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우완 구본범과 사이드암 허유강이 불펜 피칭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원래 한화 1군 엔트리에 있는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날부터 1군 선수단에 합류해 훈련을 시작했다. 김 감독이 직접 이들을 조련하기로 했기 때문.
김 감독은 불펜포수 쪽에 팔짱을 하고 선채 두 투수의 투구폼과 공끝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 젓거나 끄덕거리며 공을 평가하는 한편, 직접 팔동작을 해 보이며 '레슨'에 나섰다. 사실 이 장면은 낯설진 않다. 이미 지난 5~6월 때도 1군 엔트리에 없던 박한길이나 김민우 등을 불러다놓고 지도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때 배운 투수들이 지금 1군 엔트리에 있다. 김민우는 구멍난 선발 자리를 메울 인재임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결국 김 감독은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구본범과 허유강을 지금 손봐둬야 8월 이후 활용할 수 있다고 본 것.
특히나 김 감독은 이날 특타 지도를 아예 거른 채 두 투수를 보러 나왔다. 자신의 '루틴'을 쉽게 바꾸는 편이 아닌데도, 특타 지도를 거른 채 투수진에 매달렸다는 것 그만큼 김 감독에게 '투수 조련'이 당면 과제라는 걸 알 수 있다. 김 감독은 "지금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투수들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8월 이후 버티기 어렵다. 어떻게든 투수를 만들어놔야 한다. 선발이나 불펜 모두 마찬가지"라고 하고 있다. 과연 김 감독은 한화의 후반기를 힘차게 이끌어줄 수 있는 투수들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