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FA 시장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선수들의 몸값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순전히 구단간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가 아니라 '성적' 논리가 지배하는 지금의 체제에서는 구단간 벌어지는 FA 쟁탈전을 막을 도리가 없다. 몸값은 한없이 오른다. 지난 겨울 80억원 이상의 돈을 받은 FA는 4명이다.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80억원), 두산 베어스 장원준(84억원), SK 와이번스 최 정(86억원), KIA 타이거즈 윤석민(90억원)이 시장판도를 바꿔놓았다. 미국 진출 후 돌아온 윤석민도 실질적으로는 FA 계약이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해야 "몸값을 했다"는 말을 들을까. 20승? 50홈런?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없다. 그러나 팀에서는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일 경우 "제대로 투자했다"며 자체 평가를 내린다. 첫 시즌 활약 만으로 4년짜리 계약 전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약 첫 시즌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면 향후 선수 개인이나 팀 모두 탄력을 가능성도 높다.
장원준은 지난 21일 인천서 열린 SK전에서 시즌 10승째를 올렸다. 6이닝 동안 시종 노련한 경기운영을 펼치며 6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올시즌 18경기에서 10승5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이날 현재 다승 공동 4위, 평균자책점 2위. 지난 5월초 팔꿈치 통증으로 2주 정도 엔트리에서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자신의 로테이션을 지켰다. 지난 2008년부터 6시즌 연속 10승은 역대 8번째이자 왼손 투수로는 두 번째의 대기록이다.
두산으로서는 만족스러운 활약상이 아닐 수 없다. 18번의 선발등판 가운데 퀄리티스타트가 11번이고, 7이닝 이상도 6번이나 던졌다. 김태형 감독은 올초 장원준 입단식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시즌 끝날 때까지 부상 없이 지켜준다면 감독으로서는 만족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김 감독의 바람대로 마운드를 지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컨디션이라면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2011년의 15승도 가능할 전망이다.
윤성환 역시 장원준 못지 않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KIA 타이거즈전까지 18경기에서 8승6패, 3.5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윤성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닝이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 선발 평균 6.57이닝을 던졌다. 두 차례 완투승을 포함해 7이닝 이상을 9번이나 기록했다. 올시즌 한 번도 로테이션을 거른 적이 없는 윤성환은 3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와 170이닝 달성도 문제 없어 보인다. 지난 겨울 윤성환이 생애 첫 FA 자격을 획득했을 때 삼성은 그와의 재계약을 최우선 과제로 뒀다고 한다.
윤석민이 KIA로 돌아와 선발이 아닌 마무리를 맡는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 "마무리 치고는 몸값이 과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4년간 90억원, 연평균 22억5000만원의 몸값을 받는 마무리?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KIA는 전통적으로 마무리가 최대 약점이었다. 지난 2009년 유동훈 이후 마땅한 마무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3년과 지난해에는 외국인 투수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앤서니와 어센시오가 각각 20세이브를 올렸다. 올해는 자원이 더욱 마땅치 않았다. 김기태 감독은 고민 끝에 마무리 윤석민 카드를 선택했다. 이날 현재 31경기에서 1승5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29. 세이브 선두인 윤석민은 지난 6월 11일 이후 최근 9경기에서 12⅓이닝을 던져 7세이브를 추가했고 평균자책점 0.73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윤석민보다 평균자책점이 좋은 마무리는 없다.
역대 야수 최고액을 받은 최 정은 어떨까. 최 정은 지난 5월말부터 한 달간 부상으로 빠졌다. 어깨 부상이 등 통증까지 이어지면서 재활이 길어졌다. 22일 두산전까지 팀이 치른 84경기 가운데 31경기에 결장했다. 이미 팀에서 기대했던 수치를 달성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이날 현재 타율 2할8푼6리, 11홈런, 36타점을 마크했다. 그러나 최근 활약상은 눈부시다. 22일 두산전까지 최근 6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갔다. 이 기간 타율 4할5푼8리와 3개의 홈런을 때렸고, 9타점을 올렸다. 확실히 타격 페이스가 정상 궤도에 오른 느낌이다.
최 정은 최근의 상승세에 대해 "폼을 바꾸거나 한 것은 없다. 중심이동할 때 하체에 좀더 힘을 쓰면서 강하게 공을 치려고 한다. 최근에는 그런 스윙이 결과가 좋게 나오고 있다. 일시적으로 이렇게 할지, 계속 나갈지는 모르겠다. 아직 감을 찾았다고 볼 수 없다"며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최 정의 말대로 몸값을 하려면 시즌 마지막까지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 현재 6위에 처져있는 SK가 최 정의 활약이 원동력이 돼 상위권으로 도약한다면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