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와 '황새'가 외나무다리 대결을 펼친 상암벌. 결말은 '독수리'의 비상, '황새'의 추락이었다.
주연은 더 특별했다. 박주영(서울)이었다. 박주영이 국내 복귀 후 첫 멀티골을 터트렸다. 박주영은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포항과의 2015년 하나은행 FA컵 8강전에서 홀로 두 골을 터트리는 원맨쇼로 팀의 2대1 역전승을 이끌었다. 서울은 올 시즌 포항전 2연패 사슬을 끊은 데 이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FA컵 4강에 진출했다.
박주영의 날이었다. 서울은 전반 22분 포항의 김대호에게 일격을 당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다. 아픔은 잠시였다. 박주영이 3분 뒤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김치우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응수, 골네트를 갈랐다.
원점이었다. 포항은 전반 33분 김승대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아웃됐다. 4분 뒤 박성호의 슈팅은 옆그물을 강타했다. 전반은 1-1로 막을 내렸다. '독수리' 최용수 서울 감독은 후반 13분 이석현 대신 몰리나를 투입했다. 10분 뒤 두 팀의 명암이 엇갈렸다. 조연은 몰리나였다. 또 다시 세트피스였다. 몰리나의 코너킥이 박주영의 발끝에 걸렸고, 회심의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그의 발을 떠난 볼은 수비수 몸맞고 그대로 골문안으로 빨려들어갔다.
4월 4일 제주전에서 7년 만의 국내 복귀전을 치른 박주영은 K리그에서 5골을 기록 중이다. 멀티골은 없었다. FA컵에서 2골을 쏟아부으며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이날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에 앞서 팬들과 '슈맥데이(슈틸리케 맥주)'를 함께하며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어 경기도 관전했다. 하지만 박주영은 슈틸리케 감독의 눈밖에 있다. 다음달 2일부터 9일까지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 엔트리에도 제외됐다. 멀티골, 골시위로 건재를 과시했다.
경기 전에도 박주영은 화제였다. '황새' 황선홍 포항 감독은 "위험 부담이 있다. 결코 방심을 해선 안된다"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반면 최 감독은 박주영의 칭찬에 침이 말랐다. 그는 "일단 무릎에 물은 고여있지 않다. 하지만 무릎 연골 주변에 '찌꺼기'가 많다.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며 "하지만 운동장에선 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감독이 아닌 축구 선배로서 배울 점이 많다. 많은 후배들이 박주영을 본받았으면 한다. 주영이는 한층 성숙해 있다"고 했다. 황 감독의 우려는 현실이었고, 박주영은 최 감독의 믿음에 재대로 화답했다.
'황새'와 '독수리'은 운명도 눈길을 끈다. 올 시즌 K리그 두 차례 만남에선 포항이 모두 웃었다. 황 감독은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는 경기 전 "복수의 끝은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도망가고 싶지도 않다.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했다. 혼신의 힘을 다 쏟겠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시계는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새'는 '독수리'가 한이다. FA컵이 출발점었다. 두 팀은 16강전에서 만났다. 120분 연장 혈투 끝에 2대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대세가 갈렸다. 서울이 4-2로 승리했다. FA컵에서 기선제압한 서울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에서도 포항을 제압했다. 그 기세는 K리그 최종전까지 이어졌다. 서울이 기적적으로 포항을 4위로 밀어내고 3위를 차지하며 마지막 ACL 티켓을 거머쥐었다. 황 감독은 FA컵 복수를 통해 '화룡점정'을 꿈꿨지만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최 감독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불과 11일 전 K리그에서 서울은 포항에 1대3으로 완패했다. 안방에서 당한 치욕이라 아픔은 곱절이었다. 포항은 3월 22일 올 시즌 첫 만남에서도 2대1로 승리했다. 최 감독은 "지난 경기를 계속 되짚어봤다. 3연패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선수들도 절박하다. 잡아야 하는 경기는 반드시 잡는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경기 후 '독수리'는 '어퍼컷 세리머리'로 환호했다.
서울은 지난해 F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4강→결승전, 2경기만 더 승리하면 우승이다. '독수리'의 눈은 정상을 향해 있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