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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 '복면가왕' 김연우를 김연우라 부를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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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아버지를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있고, 김연우를 김연우라 부를 수 있게 됐다. 갑갑했던 속이 뚫리는 듯 후련하다. '호부호형'을 허락받은 홍길동의 심정이 이러했으리라. '온 국민이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을 지키느라 시청자도 10주간 애가 탔고 조바심이 났다. 이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라는 복면 이름 대신 '보컬의 신' 김연우의 이름을 마음껏 불러보자.

지난 5월 17일 MBC '일밤-복면가왕' 무대에 처음 등장해 가왕에 오른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는 7월 19일 방송에서 가왕 자리를 양보하고 아름답게 퇴장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고 64일의 시간이 흘렀다. 4대부터 7대까지 4연속 가왕 등극, 쉽게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 작성됐다.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반전 이상의 감동으로 전율했다. 클레오파트라가 복면을 벗는 순간, 일반인 판정단은 괴성에 가까운 환호와 감탄을 보냈고, 연예인 판정단은 기립박수로 존경심을 표했으며, 분당최고시청률은 26.2%(TNMS 수도권 기준)까지 치솟았다.

사실 클레오파트라의 무대는 귀신의 정체를 미리 알고 영화 '식스센스'를 보는 것처럼 맥 빠지고 허무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여러 정황 증거들과 네티즌이 찾아낸 스포일러성 단서들이 널리 공유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연우의 정체가 공개될 때의 재미와 감동이 반감되진 않았던 건, 순전히 목소리의 힘이다. 시청자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아닌, 그가 보여주는 무대 자체를 즐겼다. 그가 김연우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목소리를 자꾸만 더 듣고 싶어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연우신(神)'이라는 명성 그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대는 '신계'에 속한 듯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부터 노을의 '만약에 말야',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 바비킴의 '사랑 그 놈', 부활의 '사랑할수록'에 이어서 민요 '한 오백년'과 '진도 아리랑'까지. 장르를 불문한 그의 도전은 매번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안겼다. 모든 무대가 '반전'이고 '파격'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무대를 더 보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 그의 무대는 시청자들을 연기파 배우로 빙의하게 만들었다. 복면을 벗은 김연우도 "모두 알면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재미있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복면가왕'이 새로 쓴 역사는 김연우와 시청자가 함께 만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김연우를 통해 '복면가왕'의 미덕을 또 하나 발견했다. 프로그램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지켜주고 함께 발전시켜가는 일에 시청자들이 기꺼이 동참하게 이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시청자 참여'가 아닐까.

김연우는 "정말 홀가분하고 시원한데 약간 섭섭한 느낌도 있다. 시원섭섭한 기분이 이런 건가 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시청자들의 심정도 김연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비밀이 봉인해제돼 시원하고 김연우의 재발견이 기쁘지만, 10주간 정든 클레오파트라를 떠나보내는 심정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김연우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위로받고 서로 사랑하게 될 거란 생각에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는 작곡가 김형석의 말대로, 우리 삶에 위로를 안기는 김연우의 노래를 클레오파트라만큼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