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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뮤지컬 '아리랑', 무대에서 되살아난 한민족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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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뮤지컬 '아리랑', 무대에서 되살아난 한민족의 노래

비극의 역사를 소설이나 뮤지컬로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고대의 신화는 항상 빛나는 승리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지 않는가? 우리 역사에서 일제강점 36년은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기억이다. 투쟁과 극복의 역사라고 아무리 '자기 최면'을 걸어봐도 상처는 쓰리고, 흉터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 고통스러운 역사의 민낯에서 용기와 희망을 찾아야 한다. 오늘 슬프다고 내일 노동을 멈출 수는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니까.

뮤지컬 '아리랑'(연출 고선웅)은 조정래의 방대한 원작을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에서 1920년대 말까지 감골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양반 출신으로 의병대를 조직하는 송수익, 송수익의 노비였다가 친일파로 변신하는 양치성, 사랑하는 연인인 득보와 수국, 송수익을 흠모하는 득보의 동생 옥비의 파란만장한 삶이 강물처럼 도도하게 펼쳐진다.

제국주의의 광풍속에서 민초들의 삶이 온전할 수 없다. 빼어난 미모의 수국은 일제 앞잡이에게 유린당하고, 결혼을 약속했던 득보는 좌절에 빠진다. 옥비는 일제 검찰관의 첩이 되고, 송수익의 의병활동은 난관에 부딪힌다. 수국을 짝사랑하는 양치성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차지하려고 한다. 일제의 대토벌에 밀려 송수익은 의병과 주민들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고, 일본의 앞잡이가 된 양치성 역시 같은 열차에 몸을 싣는다.

재산은 강탈당하고, 사랑은 짓밟히고, 가족은 흩어지고, 육신은 처참히 찢긴다. 터져 나오는 슬픔을 눈물로 멈출 수 없다. 그렇다고 짐승처럼 울부짖을 수만도 없다. 그래서 만주로, 중앙아시아로, 하와이로 흩어진 한민족의 슬픔은 켜켜이 쌓여 한(恨)이 되었고, 그것이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되었다.

이리랑은 한을 담고 있지만 부르다보면 반복되는 리듬 덕분에 흥겨움이 인다. 어깨가 저절로 들썩여지면서 춤사위가 인다. 노래가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는 마법을 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아리랑의 힘이다. 뮤지컬 '아리랑' 역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파란만장한 민초들의 삶, 그리고 물결치는 드라마의 진폭 속에서 아리랑의 멜로디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관객들은 복잡다단한 역사의 세부 사실을 넘어 아리랑를 통해 무대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주제를 응축한 강력한 아리랑의 리듬을 담은 곡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견 김성녀(감골댁)를 비롯해 윤공주(수국), 김우형(양치성) 등의 연기 앙상블은 탄탄하다.

한민족은 일제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면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중국의 연변, 러시아의 연해주, 중앙 아시아의 사막과 초원에서도 같은 핏줄을 만날 수 있다. 국적은 다르고 한국어는 서툴어도 모두 같은 노래 한 곡을 알고 부를 수 있다. 바로 아리랑이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diaspora)는 비극의 산물이지만 어떻게 보면 남북 통일을 넘어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뮤지컬 '아리랑'이 무대에 되살아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신시컴퍼니 제작. 9월 5일까지 LG아트센터.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