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60분도 짧다.
BS2 수목극 '어셈블리'가 15일 첫 선을 보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23년 간 용접공으로 일했던 진상필(정재영)이 여야 공천 후보로 지목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진상필은 어느날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데모를 했지만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패소한 상황. 그는 지역구 의원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해당 의원은 뇌물 수수 혐의로 좌천됐고, 선배 달수(손병호) 는 보궐선거 야권 후보 자리를 진상필에게 양보했다. 이에 백도현(장현성)은 진상필에게 여권 후보 자리를 제안했다.
첫 방송부터 탈출구는 없었다. 정현민 작가는 특유의 날카로운 촌철살인 대사로 서민듣의 애환과 정치권의 눈치 게임을 그려냈다. 진상필이 손해배상 상고심에서 패소하고 판사에게 "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는 애 달래는 척 하다가 뺨 때렸잖아요. 또 때렸잖아요. 호떡 구울 때도 한번만 뒤집지 두 번은 안 뒤집습니다. 호떡도 그런데 대한민국 법이 호떡만 못합니까"라고 일갈하는 장면에서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대한민국 '솜방망이 법' 체계를 꼬집었다. 대리운전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던 김규환(옥택연)이 "해고 그거, 우리 같은 놈들 소원이다.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빌어먹을 해고 그거 당하는 게 소원이다"라고 대드는 장면에서는 '삼포세대'라 불리는 20대 청년들의 끔찍한 취업난을 엿보이게 했다. 지난해 '정도전'에서 교묘하게 현 정치권을 반영하는 듯한 '사이다 대사'를 쏟아냈던 정 작가의 필력이 다시한번 빛을 발한 것.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도 빛났다. 정재영은 첫 드라마 도전이었지만 명연기를 선보였다. 직장을 잃어 울분을 토해내고, 부조리한 법 체계에 분노하는 등 다양한 감정 연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스크린 명배우의 관록을 과시했다. 송윤아와 김서형도 팽팽한 연기 대결을 벌였다. 강직한 성품의 최인경(송윤아)과 속물 근성에 쩔어있는 홍찬미(김서형)로 완벽 변신, 얼음 여왕들의 진검 승부를 펼쳤다. 박영규의 연기 변신도 행복한 볼거리였다. '정도전'에서 이인임으로 완벽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그는 이번엔 원로 의원 박춘섭 역을 맡아 너구리 같은 응큼함과 원로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장현성 역시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맞대응,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미지수' 옥택연도 극에 완벽 적응했다. tvN '삼시세끼'에서 보여줬던 '옥빙구'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현실에 좌절하고, 그럼에도 꿈을 위해 다시 한번 일어나는 삼포세대 오뚜기 청춘의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해냈다.
비록 출발은 5.2%(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에 그쳤다. 8일 종영된 '복면검사' 마지막회(6.9%)보다 1.7% 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동시간대 방송된 SBS '가면'(11.3%)과 MBC '밤을 걷는 선비'(7.7%)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을 냈다. 하지만 뒷심에 강한 정 작가의 이력과 배우들의 열연, 스피디한 연출과 사실적인 대사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웰메이드작의 탄생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시청자들은 '장편영화 같았다', '만족스럽다. 본방 시청하는 드라마가 생겼다', '오랜만에 드라마 연기에 몰입해서 봤다'는 등 호평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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