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있어야 배우다.
tvN '구여친클럽'의 고현을 만났다. '구여친클럽'은 망해가는 영화사를 살리기 위해 김수진(송지효)이 인기 웹툰작가 방명수(변요한)의 구여친 소재 웹툰을 영화화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고현은 극중 방명수의 작업실 동료이자 '여우 구여친' 라라(류화영)의 팬인 이진배 역을 맡아 개성 넘치는 연기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연달아 7월 방송 예정인 MBC 에브리원 웹툰드라마 '웹툰히어로-툰드라쇼' 중 김재한 작가의 코너에도 캐스팅 됐다. 해당 코너는 여대상 육아영과 꽃미남 4인방이 함께 아기를 키우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으며, 고현은 꽃미남 4인방의 막내 준영 역을 맡아 EXID 정화와 호흡을 맞춘다. 브라운관 데뷔와 동시에 착착 스타의 길을 향해 커리어를 쌓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신은 "남들보다 천천히 가는 듯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연극 '서안화차'를 보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 "연기에 대해서는 무지할 때였다. 어떻게 기회가 돼 친구와 연극을 보러갔다. 무대 바로 앞에 앉았는데 남자 배우 다리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원래 호기심이 많아서 '실제 사람일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다리를 딱 잡아봤다. 그런데 그 배우가 거기에 대한 리액션을 하고 연기를 이어가더라. 그때 너무 멋져서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반해서 연기를 시작했다"는 설명.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연기 준비를 시작했다. 연기 학원을 다니며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배우의 길을 걷겠다는데 두 팔 벌려 환영할 부모님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터. 그 역시 부모님의 반대에 가로박혔다. 고현은 "부모님이 굉장히 싫어하셨다. 내가 연기한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으셨다. 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경제적인 지원도 없었고 '니가 연기를 하면 진짜 대학은 가니'라는 반응이셨다. 그래서 동냥으로 연기를 배웠다. 서울시 연기 예술 지원 같은 게 있으면 신청해서 수업을 들었고 좋은 연극 수업 선생님이 계시면 찾아가서 가르쳐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했고 군대시절에도 연기를 갈고 닦았다. 조승우 류수영 이제훈 등이 활약했던 서울청 홍보단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고 제대 후에는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잡은 기회가 바로 '구여친클럽'이다. 그는 "내실을 다지고자 노력했다. 나중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준비했다. 너무 천천히 갔지만 '버티면 시간이 해결해주는구나', '계속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사실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이 쉽진 않았다. 연기를 그만둔 적도, 그래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고현은 "2년 정도 아예 연기를 그만둔 적이 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아르바이트로 돈만 벌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좀 괴팍해지더라. 예민해지고 성격이 변했다. 그게 연기를 못해서 그런 거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시간을 보내니까 맨날 술만 먹었고 그래도 풀리지 않았다. 병원에도 한번 갔었다. 우울증 초기 증상이었다. 그래서 그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구나. 어쨌든 나도 연기에 빠진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그 힘으로 달리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이걸 내가 왜 하지?'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그때 생각하면 금방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배우로서 항상 갈증이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뭘 하면 안되는지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고현의 목표는 '고집있는 배우'가 되는 것.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기 위해 달리기 보다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연기와 캐릭터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그는 "고집있게 연기하고 싶다. 내 연기를 하고 싶다. 정형화 됐다는 말을 너무 싫어한다. 새로움이 없는 게 싫다. '안녕하세요' 한 마디를 하더라도 계속 봐왔던 인물들을 똑같이 연기하고 싶진 않다. 분명히 내 색대로 내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서 공감대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