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수순처럼 다시 박병호(29)다.
넥센 히어로즈 4번 타자 박병호가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 3회에 1점 홈런을 터트려 홈런 공동 1위에 올랐다. 시즌 24번째 홈런을 때린 박병호는 무섭게 치고 나가던 강민호(롯데)를 따라잡았다. 박병호의 홈런 1위는 4월 7일 이후 80여일만의 일이다.
지난 몇 년 간 '홈런왕=박병호' 공식이 만들어졌는데, 올해도 비슷한 흐름이다. 시즌 초 주춤하다가 5~6월 가속도를 붙여 질주하는 패턴이 올해도 재현될 조짐이다.
2011시즌 중간에 LG 트윈스에서 히어로즈로 이적한 박병호는 풀타임 첫해였던 2012년부터 3년 연속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0~1992년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2001~2003년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에 이어 역대 3번째로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이제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고지를 향해 달려간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반짝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박병호는 2014년 시즌에 앞서 "뭐든지 3년 정도 잘 해야 인정을 받는 것 아닌가. 올해가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3월 시범경기 때 만난 박병호는 "지난해에 강정호를 보고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4년 연속 홈런왕 타이틀을 따내고 해외 진출. KBO리그 간판타자 박병호가 그리는 시나리오다.
▶2년 연속 50홈런 가능하다.
6월 29일 현재 7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4푼9리(2위), 97안타(1위), 24홈런(1위), 62타점(5위), 70득점(1위). 타격 전 부문 최상위권에 올라 있는데, 장타력을 유지하면서 더 정교해졌다. 홈런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좋은 결과물이다.
지난 3년 간 73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기록을 보자. 2012년에 2할9푼1리(시즌 타율 2할9푼), 2013년에 3할2푼1리(3할1푼8리), 2014년에 3할3리(3할3리)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보다 타율이 4푼 이상 올라갔다. 홈런수가 다소 준 대신 타율이 좋아지고, 안타수가 늘었다. 선구안이 좋은 박병호는 여전히 볼넷을 많이 골라내지만, 이전보다 더 공격적인 모습이다.
6월 29일까지 73경기에서 24개를 때려 경기당 홈런 0.329개. 52홈런을 친 지난해에 비해 조금 처지는 페이스다. 지난 시즌에는 개막전부터 73경기에서 29홈런, 경기당 0.406개를 터트렸다.
현재 홈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47.3개가 가능하다. 그런데 박병호는 기록과 별개로 몰아치기 능력이 뛰어난 거포다. 특히 후반기에 강했다. 지난해 개막전부터 73경기에서 29개를 때렸는데, 이후 55경기에서 23개를 쳤다. 시즌 경기당 평균 기록을 넘어서는 0.418개를 쳤다.
올해부터 팀당 경기수가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늘어 71경기가 남았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박병호에게는 보여줄 시간이 아직 많다.
지난 겨울에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올시즌 어려움이 예상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강정호가 5번 타자로 뒤를 받쳐주면서 상대 투수의 집중도를 분산시켰는데, 이런 메리트가 사라졌다고 했다. 박병호도 인정한 부분이다. 하지만 '강정호 없는 히어로즈'가 올해도 KBO리그 최강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유한준 김민성 등이 박병호를 호위하고 있다.
▶피말리는 경쟁, 부담이 아닌 힘이다.
새 기록과 도전의 필수 요건 레이스 경쟁자. 52홈런을 때린 지난해에는 팀 후배 강정호가 있었다. 시즌 중후반까지 강정호와 치열한 홈런 경쟁을 펼치면서 긴장감을 유지했다. 막판에 박병호가 무섭게 치고나갔으나 강정호의 존재감이 컸다.
올해는 외부 경쟁자들이 줄을 섰다. 공동 1위 강민호를 비롯해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선수 야마이코 나바로, NC 다이노스 거포 에릭 테임즈가 1~2개차로 박병호를 쫓고 있다. 또 20개를 때린 삼성 최형우, 롯데 황재균도 만만찮은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비교적 세심한 성격인 박병호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런 경쟁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3년 간 이런 압박감을 이겨내고 홈런왕에 올랐다. 기술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경험만큼 확실한 강점은 없다.
지난 3년 간 전경기에 나선 박병호는 경기 출전 의욕이 강하다. 일시적인 슬럼프로 인해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선발에서 빠진 적이 있지만, 모든 경기에 출전해 꾸준한 활약을 했다. 별다른 부상도 없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해 전경기, 전타석 출전이 가능하다. 부상 변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올해를 채우면 구단 허락하에 해외진출이 가능한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본인도 해외 진출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고, 구단도 일찌감치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공표했다. 올해가 박병호 야구 인생에 분수령이 될 것 같다. 해외진출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병호는 지난해 1년 간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도전을 준비를 하는 걸 주의깊게 지켜봤다고 한다. 히어로즈의 거의 전 경기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찾아왔는데 강정호는 흔들림이 없었다. 박병호는 "강정호가 그런 환경에서 집중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정호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올해는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흔들림없이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박병호 최근 4년간 73경기를 치른 시점 성적
연도=타율=안타=홈런=타점=득점
2015년=0.349(2위)=97안타(1위)=24홈런(1위)=62타점(5위)=70득점(1위)
2014년=0.303=76안타=29홈런=59타점=74득점
2013년=0.321=84안타=19홈런=64타점=51득점
2012년=0.291=76안타=17홈런=63타점=45득점
◇박병호 최근 4년간 월별 홈런
연도=3~4월=5월=6월=7월=8월=9월=10월=계
2015년=6=9=9=-=-=-=-=24
2014년=6=14=9=4=8=7=4=52
2013년=4=5=5=8=3=11=1=37
2012년=4=7=5=2=6=7=0=31
※2012년 133경기, 2013~2014년 128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