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 '모르고' 먹었을까. 혹시 누군가 "이건 (도핑테스트에서도)모를 것"이라고 한 것은 아닐까.
자기 몸이 곧 재산인 프로스포츠 선수에게 "모르고 먹었다"는 말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만에 하나 정말로 모르고 먹었다고 해도 그걸로 용서받을 순 없다. 그런 종류의 '무지'는 일종의 직무 유기다. 그 '무지'로 인해 프로스포츠의 공정한 룰을 깨트렸고, 동시에 자신에게 믿음과 사랑을 준 팬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 정황상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대략 어떤 제품을 복용하는 지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일반적인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생활 패턴을 볼 때 복잡한 성분의 전문 의약품에 대해 알기란 쉽지 않다. 또 그런 의약품을 구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선수에게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심지어 그런 제품을 구매해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른바 '전문 약물브로커'다.
미국 종합격투스포츠 UFC에서 활약하는 김동현은 과거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선수들은 정말 과학적으로 '금지약물' 복용하곤 한다. 여러가지 약품을 절묘하게 섞어서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런 선수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더 이를 악물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한 '절묘하게 섞어서 제공하는 사람들'이 바로 전문 약물 브로커다.
해외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디자이너(Designer)'라고 부른다. 대부분 의사 출신인 이들 '디자이너'는 선수들에게 도핑 테스트에서 검출되지 않는 최신 약품을 제공한다. 또는 금지 약물의 체내 잔류 시간등을 전문적으로 계산해 도핑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약물 복용 주기를 설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 이런 식의 전문 '디자이너'은 없다. 사실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UFC나 프로레슬링 WWE 등과 같은 격투스포츠 분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격투스포츠는 대단히 위축돼 있다. 그래서 오히려 '디자이너'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 또 '디자인'을 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커서 의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약물 브로커'까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구하기 어려운 해외 제품이나 전문의약품이 어떻게 선수들의 손에 전해지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최근에는 '해외 직구'를 통해 다양한 단백질 보충제 등을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규시즌 일정을 소화하는 프로선수가 이런 제품을 직접 해외 사이트에 접속해 구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금지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전달하는 이른바 '브로커'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제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선수에게 자세한 정보까지 알려주진 않는다. 혹은 금지성분에 대해 알았다고 해도 그걸 자세히 경고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다. 돈을 받고 전달하면 끝이다. 결국 피해는 선수들의 몫이다.
결국 선수들은 전문 의료진이나 팀 트레이닝 코치를 통하지 않는 부정한 경로로 입수된 약품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한 재교육이 강력히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부정한 경로로 금지성분이 포함된 약품을 판매하는 브로커들에 대한 단속도 병행되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