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짜라. 오늘 선발오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넥센 히어로즈와의 홈경기를 앞둔 한화 김성근 감독은 코칭스태프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김광수 수석코치에게 한 말인 듯 하다.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선발 오더 짜기'는 경기전 김 감독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작업이다. 선발 오더를 제대로 만들었을 때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지난 4월29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4대9로 역전패한 뒤 "오더를 잘못 짰다"며 자책한 적도 있다.
그런 김 감독은 왜 선발 오더를 코칭스태프에 맡겼을까. 여기에는 최근 팀 상황에 대한 김 감독의 고민이 무척 크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주전 선수들의 계속된 타격 부진. 그리고 부상. 이로 인한 5연패.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경기 구상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았던 것. 특히나 주전 유격수로 공수에 걸쳐 알토란같은 활약을 해주던 강경학의 부상 이탈은 김 감독에게 흔히 말하는 '멘붕'을 안겼다.
김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강경학의 부상 소식을 힘겹게 전했다. "경기(주말 NC전)를 하다가 오른쪽 어깨를 조금 다친 것 같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완전 회복에 일주일 전후로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아예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당장 2번 타자로 누굴 넣어야 할 지 고민이 크다"고 말한 김 감독은 "오더를 제대로 못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아예 코치들에게 '너희들이 한번 짜봐라'고 맡겼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고민은 쉽게 이해가 된다. 강경학은 올해 한화에서 가장 기량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 시즌 초반에 비하면 일취월장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붙박이 유격수에 2번 타자로 좋은 활약을 하고 있었다. 월간 타율의 변화에서 이런 실력 향상 페이스를 알 수 있다. 4월에 37경기에서 타율 2할7푼을 기록한 강경학은 5월에는 46경기에서 겨우 1할7푼4리에 그쳤다. 그런데 6월들어서는 다시 2할9푼2리로 크게 향상됐다. 리드오프 이용규의 뒤에서 좋은 활약을 해냈다.
하지만 강경학이 최소 10일간 빠지게 되면서 한화는 두 가지 숙제를 받게됐다. 하나는 테이블 세터진의 재구성. 정근우는 김경언이 빠진 3번을 맡아야 한다. 이용규의 뒤를 받칠 인물이 필요하다. 일단 이날 한화는 1군 엔트리에 불러올린 외야수 장운호를 2번에 투입했다. 하지만 타순은 향후 수시로 바뀔 듯 하다.
두 번째로는 유격수 대체요원. 이건 방법이 많다. 일단 경험많은 권용관이 나서면 된다. 또 지난해 주전 유격수 한상훈도 있다. 여차하면 주현상이나 이창열도 투입이 가능하다. 어쨌든 타격보다는 고민이 덜 하다. 과연 한화가 강경학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지 주목된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