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가 필요하면 영수를 선발로 내면 되겠네."
간절히 원했던 비가 드디어 그라운드를 적셨다. 메말랐던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의 잔디들이 모처럼 촉촉하게 빗물을 머금은 채 생기를 되찾아간다. 덩달아 지쳐있던 한화 이글스 선수들 사이에도 화색이 돌았다.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냐!" 심지어 한화 김성근 감독마저 내리는 비를 반기고 있다.
24일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화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원래 강수 확률이 크지 않았었다. 오후 2시30분 정도까지만 해도 흐리기만 했지 비가 내릴 기미는 없었다. 기상청의 오후 강수 확률도 30% 남짓이었다.
그런데 오후 3시부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굵어지더니 오후 4시가 넘어서는 장마철에나 볼 법한 집중 폭우로 바뀌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시야마저 뿌옇게 가릴 정도. 비가 처음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부근에 방수포를 덮었지만, 그걸로 커버할 수 없을 비가 쏟아졌다. 결국 오후 4시30분경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올해 유난히 심한 가뭄 현상을 감안하면 상당히 반가운 비다. 하지만 프로야구 일정을 생각하면 이날의 우천 취소가 반길 일만은 아니다. 일정이 뒤로 밀릴수록 좋을 게 없다. 그렇지만 한화 선수단은 이날의 우천 취소를 몹시도 반기고 있었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총력전 모드로 쉴 새없이 경기를 하느라 체력과 집중력이 바닥권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 이런 타이밍의 우천 취소는 달콤한 휴식의 기회다.
특히 한화는 올해 상대적으로 우천 취소가 적었다. 이날 취소를 포함해 총 6번 우천 취소를 경험하며 10개 구단 중 넥센 롯데와 함께 공동 6위를 기록했다. 특이한 점은 5월에 단 한 차례도 우천 취소가 없었다는 것. 4월에만 5번 취소됐고, 지난 4월28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이 가장 최근의 우천 취소 경기였다. 이후 한화는 다른 팀들이 우천 취소로 숨을 고를 때 쉴 새없이 전력질주를 해왔다. 58일, 약 2개월만의 우천 취소를 맞이한 것. 이런 사정 때문에 김성근 감독 조차 "적지 않은 선수들이 아프고, 지쳐있는 데 쉬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날 우천 취소에는 조금 흥미롭고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바로 배영수와 비의 연관성이다. 이날 선발로 예정된 투수가 배영수였는데, 올해 공교롭게도 배영수의 선발 예정 경기에서 우천 취소가 많았던 것. 이날 취소를 포함해 3번이나 된다. 팀 전체 우천 취소 중 3번이 배영수 선발 경기였던 것. 4월16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과 4월19일 대전 NC 다이노스전 때도 배영수가 선발 예고됐다가 취소된 바 있다.
때문에 배영수는 이날 비내리는 그라운드를 보며 "또 내가 선발 나간다고 하니까 비가 오네.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라고 푸념했다. 그러나 표정은 밝아보였다. 한편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성근 감독은 "앞으로 우천 취소가 필요할 때마다 배영수를 선발로 내야겠다. 배영수가 '비'영수네"라며 껄껄 웃었다. 우천 취소로 팀이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 몹시도 반가운 듯 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