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필승조 정찬헌(25)은 21일 목동전에서 블론세이브와 패전을 함께 기록했다. 박병호에게 동점 솔로포를 맞았고, 박동원에게 끝내기 스퀴즈 번트를 내줬다. LG는 3대4로 역전패, 3연승 행진이 끊어졌다.
정찬헌은 자책했다. 짐을 꾸리면서 스파이크를 세게 내리쳤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 수가 없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그날밤 그는 술을 마셨다. 여기까지는 여느 프로야구 투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블론세이브도 패전도 또 화풀이도 화김에 술도 한잔할 수 있다.
그런데 정찬헌은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지났다. 정부에서 프로야구 선수 뿐아니라 국민들에게 하지 말라고 법으로 금지한 음주운전을 했다. 그리고 오토바이와 접촉사고까지 냈고,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이렇게 되면 누구도 정찬헌을 보호할 수가 없다.
정찬헌의 속마음을 감안할 때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봐줘도 음주까지다.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할 걸 자책하면서 술 한 잔을 기울일 수는 있다. 또 22일은 휴식일이었다.
정찬헌은 자신 보다 좀더 팀을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정찬헌에 앞서 이미 적지 않은 선수들이 음주사고를 냈고 처벌도 받았다. 그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양상문 LG 감독은 올해 1월 시무식에서 음주에 대한 얘기를 강조했다. 시즌 중간에 코칭스태프가 금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선수들에게 간접적으로 자제를 부탁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양 감독은 별도의 자리에서 "맥주 한두 잔까지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고 여유를 주었다. 다음날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 가면 안 된다는 걸 분명히 했다. 음주운전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정찬헌은 사령탑의 당부를 결과적으로 발로 차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양상문 감독이 허탈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양 감독은 정찬헌을 무척 아꼈다. LG의 미래 마무리 투수라고 치켜세웠다.
그랬던 정찬헌이 LG 구단과 양 감독을 이번 시즌 가장 큰 위기에 빠트렸다. 정찬헌은 이번 시즌 3승6패1세이브5홀드, 평균자책점 5.52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 A급은 아니지만 구위는 위력적이다.
정찬헌은 이번 사고로 3개월 출전 정지 및 벌금 1000만원의 구단 중징계를 받았다. 앞으로 KBO로부터 추가 징계 가능성도 높다. 사실상 이번 시즌 남은 경기 출전이 어렵다고 보는 게 맞다. 당분간 자숙의 시간이 불가피하다.
현재 LG 선수 구성상 정찬헌의 빈자리를 대신 메워줄 선수는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LG 중간 투수진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LG는 22일 현재 30승1무38패로 9위다. 지난 5월초 7연패로 9위가 된 후 한달 이상 고전 중이다. LG는 지난 15일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과 외국인 선수 교체(한나한 퇴출, 히메네스 영입)를 동시에 단행했다.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결단이었다. 이후 1패 뒤 3연승 그리고 1패를 했다. 조금씩 상승세의 발판이 마련되는 쪽으로 흘렀다. 정찬헌은 그런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 사회에선 아들이 사고를 치면 부모가 고개를 조아린다. 프로스포츠에선 선수가 잘못하면 감독이 대표로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이미 수 차례 봐왔다.
사고 당사자 정찬헌은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사고의 한마디를 남기고 뒷전으로 빠졌다. 양 감독이 "선수단을 잘못 관리했다"고 팬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