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이적시장의 키워드는 '홈그로운(Home Grown) 제도'다.
EPL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적시장의 큰손이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앞세워 지갑을 여는데 주저함이 없다. EPL은 지난시즌 무려 12억1000만유로, 우리나라돈으로 1조4300억이 넘는 돈을 썼다. 공정한 중계권료 배분으로 빅클럽 뿐만 아니라 중소 클럽 역시 선수 영입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선덜랜드, 레스터시티 등과 같은 클럽도 1000만파운드짜리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 리그가 바로 EPL이다. 이같은 투자로 EPL은 스타선수들의 집합소가 됐고, 이는 다시 EPL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최근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다소 주춤하고 있으나, EPL은 2000년대 들어 가장 꾸준히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리그다.
그러나 이 같은 리그 성적이 곧 대표팀의 경쟁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EPL 황금기에도 단한번도 월드컵, 유럽선수권대회 같은 메이저대회 우승을 안지 못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아예 16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잉글랜드 축구계는 외국인 선수의 과다 유입이 자국 선수들의 기회 감소로 해석했다. FA의 '쇄국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실제로 EPL 출범 초기인 20년 전 70%에 달했던 잉글랜드 선수의 비율은 지난 시즌 32%로 떨어졌다. 그나마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보좌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챔피언스리그 등 수준높은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빅클럽으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아스널은 단 한명의 잉글랜드 선수 없이 라인업을 구성할 정도다.
결국 FA는 2015년 3월 칼을 뽑아들었다. 크게 두가지를 손댔다. 일단 비 EU 선수들의 EPL 진출을 제한했다. 취업비자 기준을 더 까다롭게 해, 최근 2년간 출신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을 기존의 70위에서 50위권으로 대폭 높였다. 선수들이 소화해야 하는 A매치 경기 수도 국가별 랭킹에 따라 차등을 뒀다. 그리고 최근 구단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홈그로운 제도에도 변화를 줬다. 현재 각 구단은 25명의 1군 명단 가운데 최소 8명의 홈그로운 선수를 보유해야 하는데, 개정된 제도에 따르면 이를 2016년부터 4년간 12명으로 늘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홈그로운 선수의 기준 변화다. 기존의 홈그로운 선수는 21세 이전에 잉글랜드, 웨일스 팀과 3년 이상 계약을 맺은 선수를 의미한다. 즉 18세 이전에 계약을 하면 홈그로운 선수로 분류된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에서는 15세부터 팀에 등록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해 기존에 홈그로운 선수에 해당하는 선수들도 이를 박탈 당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하파엘(맨유), 필리페 센데로스(애스턴빌라), 모르강 슈나이덜랭(사우샘프턴), 알렉스 송(웨스트햄),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 파비오 보리니(리버풀) 등이 이에 속한다. 결국 각 구단들은 능력있는 외국인 선수의 영입을 자제하거나, 이미 보유한 선수를 내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각 구단들은 전력보강과 홈그로운 제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 수준급 잉글랜드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라힘 스털링(리버풀)과 잭 윌셔(아스널)다. 스털링과 윌셔는 잉글랜드가 자랑하는 재능이다. 잉글랜드 선수 답지 않은 기술과 센스를 보유했다. 리버풀과 사실상 재계약이 결렬된 스털링에게 맨시티, 맨유, 첼시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상 이적료는 4000만파운드 이상이다. 윌셔 역시 맨시티와 첼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올시즌 엄청난 득점력을 보인 '허리케인' 해리 케인(토트넘)은 맨유로부터 4000만파운드의 제안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몸값이 오른 것은 이들 대표급 선수들 뿐만이 아니다. 에버턴의 존 스톤스, 웨스트햄의 애런 크레스웰, 토트넘의 대니 로즈, QPR의 찰리 오스틴, 리버풀의 리키 램버트 등도 상종가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이적료만 오르고 있다. 제임스 밀너가 리버풀로 떠나며 홈그로운 선수가 부족해진 맨시티는 잉글랜드 선수 영입에 혈안이 돼 있다.
이같은 변화는 EPL의 경쟁력 약화와 시장의 제한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들고 있다. 과연 FA의 정책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일단 잉글랜드 선수들의 이적이 다음시즌 EPL 판도 변화 예상의 중요 포인트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