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을 배운 월드컵이었다."
'지메시' 지소연은 22일 캐나다여자월드컵 프랑스와의 16강전 직후 믹스트존에서 이렇게 말했다. 월드컵 무대, 세계의 벽을 주눅들지 않았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봤다"고 했다.
사실 지소연에게는 아쉽고, 또 아쉬운 월드컵이었다. 지소연은 두 어깨에 언제나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무게감을 짊어지고 달린다. 첫 월드컵, '에이스의 부담감'이 컸다. 윤덕여 감독이 따로 불러 면담할 정도였다. 브라질전 지소연은 단 한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코스타리카전 컨디션이 올라왔지만 2대2 무승부 후 "내가 너무 못했다"고 자책했다. 스페인전을 앞두고 지소연 "축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 고비를 잘 넘겨온 좋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의 말처럼, '그 고비'를 넘었다. 극적인 첫승으로 16강의 꿈을 이뤘다. 스페인전 후반 지소연은 동점골의 시작점이 됐다. 전반에도 지소연은 몇차례 오른쪽 강유미를 노린 칼날 패스를 찔러넣었지만 속도감이 맞지 않았었다. 그러나 후반 8분 오른쪽으로 '치고달리는' 강유미의 스피드를 계산하고, 공간으로 뚝 떨어뜨려준 패스는 일품이었다. 상대수비를 이겨내며 공을 지켜냈고, 휘청거리면서도 강유미를 보고 정확한 공간패스를 찔러넣었다. 클래스를 입증했다. 이어진 강유미의 '택배 크로스', 조소현의 슈팅 타이밍, 모든 과정이 자로 잰 듯 정확했다. 윤덕여 감독은 "매경기 경기력이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16강의 꿈을 이룬 후 위기가 찾아왔다. 스페인전 직후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 이상이 왔다. 몬트리올 재입성 후 첫 회복훈련에서 지소연은 벤치를 지켰다. 전날 공식 훈련, 10대10 게임에서도 지소연은 뛰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16강전 당일 아침, 윤 감독이 지소연과 면담했다. 프랑스의 스피드에 스피드로 맞서야 했다. 100%의 몸상태가 필요했다. 지소연은 운명을 받아들였다. "프랑스전 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내가 뛰려고 교체카드 하나를 버릴 수는 없었다"고 했다. 팀플레이어답게 자신 대신 그라운드에 나서는 후배 이금민에게 "볼을 소유해야 한다. 침착하게 잘하라"고 격려했다.
지소연은 2년전 일본 고베아이낙 시절 클럽선수권 결승 무대에서 유럽챔피언스리그 올림피크 리옹을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린 경험이 있다. 연장 후반 페널티킥을 내주며 분패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MIP(Most Impressive Player)를 받았다. 프랑스 선발 엔트리 중 7명이 올림피크 리옹 에이스들이었다. 믹스트존 등뒤로 프랑스 선수들이 지나가자 "아, 다 그때 같이 맞부딪쳤던 선수들인데…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팀에 도움이 돼야할 때 부족해서 아쉬웠다. 뛰어넘어야 할 벽도 실감했다. 월드컵 무대에서 증명해야 진짜 에이스"라며 입술을 깨물었다."일본에서도 보여줬고, 영국에서도 보여줬는데, 정작 보여줘야할 월드컵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월드컵인 것같다"며 웃었다.
월드컵의 경험은 지소연에게 또하나의 자극제가 됐다. 다음 시즌 계획을 묻는 질문에 "2개 리그를 한꺼번에 뛰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취재진에게 한참을 망설이다 "미국리그는 4~8월까지다. 프랑스나 독일리그는 5월에 끝난다. 가능한 많은 무대에서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했다. 월드컵의 끝자락에서 지소연은 다시 도전을 결심하고 있었다. 몬트리올(캐나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