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KIA 타이거즈의 좌완 에이스 양현종(27). 비교 대상이 없는 압도적인 시즌이다.
21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 위즈전에 선발 등판한 양현종은 7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지난 16일 LG 트윈스전에서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한데 이어, 지난 일주일 간 2경기에 나서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봉쇄했다.
지난 4일 두산 베어스전 9이닝 완봉승을 포함해 5이닝 이상을 던져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가 8게임이나 된다. 4경기에 걸쳐 2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교 불가' 대한민국 대표 에이스 양현종이다.
양현종은 지난 겨울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좌절이 양현종에게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된 걸까. 그는 지난해보다 몇단계 진화한 것 같다.
▶얼마나 압도적인가.
양현종은 꾸준하고 강력하다. 올해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12경기를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로 마쳤다. 5이닝을 던진 2경기를 제외하고 13경기에서 6이닝 이상을 책임졌다.
특히 위기에서 강했다. 피안타율이 2할9리이고, 클린업 트리오(3~5번) 상대 피안타율이 1할9푼7리인데, 득점권 피안타율이 8푼2리다. 실점 위기에 몰리면 압도적인 구위로 벗어났다.
22일 현재 8승2패, 평균자책점이 1.37. KBO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이 4.74인데,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1점대는 양현종이 유일하다. 양현종에 이어 유희관(두산 베어스)이 2.85로 2위, 알프레도 피가로(삼성 라이오즈)이 3.41로 3위다.
최근 몇 년 간 양현종처럼 압도적인 투수는 없었다.
'타고투저' 광풍이 몰아친 지난해에는 1982년 리그가 출범한 후 두번째로 3점대 평균자책점 1위가 나왔다. 삼성 외국인 투수 릭 밴덴헐크가 3.18을 기록, 타이틀을 가져갔다.
2010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 2011년 윤석민(KIA)이 1차 타깃이다. 류현진은 1.82을 기록하고 1위에 올랐는데, 마지막 1점대 1위였다. 2010년 류현진과 2011년 윤석민(2.45) 이후 외국인 투수들이 득세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간 브랜든 나이트(넥센 히어로즈·2.20), 찰리 쉬렉(NC 다이노스·2.48), 밴덴헐크(3.18)가 1위에 올랐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나.
지난 시즌에도 최고 수준이었지만 올해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16승(8패)을 거뒀으나 평균자책점이 4.25나 됐다. 2007년 프로에 데뷔해 한 번도 평균자책점 2점대를 던지지 못했다. 2013년 3.10이 가장 좋았다.
무엇이 좋아진 걸까. 이대진 투수코치는 릴리스 포인트를 앞으로 끌고 나오면서 볼끝에 힘이 생겼다고 했다. 21일 kt전에서 패스트볼 구속이 130km 후반에서 146km까지 나왔다. 작정하고 던지면 150km까지 가능하다.
사실 구속만 놓고보면 평범한데, 스피드 건에 찍힌 스피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타자가 체감하는 속도가 다르다. 타자가 좀처럼 배트 중심에 때리기 어렵다. 양현종 본인이 체득한 투구 노하우다. 이대진 코치는 양현종을 "영리한 선수"라는 말로 짧게 정리했다.
위력이 더해진 패스트볼에 변화구도 이전보다 힘이 붙었다. 이대진 코치는 "커브 스핀이 좋아졌고, 체인지업도 바깥으로 휘어가는 구종이 생겼다. 슬라이더 또한 각이 좋아졌다. 슬라이더가 주로 횡으로 꺾였는데, 21일 경기에서는 종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속구와 변화구 모두 완벽에 가깝게 구사하는데, 타자가 당해낼 도리기 없다.
지난 4월까지 양현종은 볼넷 때문에 고생했다. 잘 던지다가도 갑자기 볼넷을 내주면서 투구수가 늘었다. 매경기 4~5개를 허용했다. 하지만 5월 이후 제구력이 안정을 찾으면서 4구가 크게 줄었다.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부상과 체력이 변수다.
2013년 전반기에 막강 구위를 이어가다가 부상으로 주저앉은 경험이 있다. 그해 6월 말까지 13경기(선발 12경기)에 등판해 9승1패-평균자책점 2.15를 기록했다. 거침없이 내달리던 그는 6월 말 옆구리를 다쳐 페이스를 잃었다. 부상에서 복귀해 5경기에 나섰지만 승리없이 2패-5.96을 찍었다. 결국 부상에 덜미를 잡혀 9승3패-평균자책점 3.10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 시즌에도 후반기에 들어 페이스가 많이 가자앉았다. 6월까지 15경기에 등판해 9승4패-3.67을 기록했는데, 7월 이후 14경기에서 7승4패, 5.00을 마크했다.
이제 시즌 전체 일정의 45%를 소화했다. 이전 두 시즌과 올해는 다르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기간에 불펜 투구없이 체력훈련에 집중했다. 어깨를 아끼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동료 투수들과 다른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당시 양현종은 "시즌 후반에 페이스가 떨어졌는데, 올해는 마지막까지 꾸준히 던지고 싶다"고 했다. 이전과 준비 과정이 달랐다. 체력적인 면에서 여유가 있다. 부상도 체력적인 문제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이대진 코치는 "관리를 잘 하면 지금 구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역대급 시즌이 될 수도 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KBO리그 역대 평균자책점 1위
연도=선수(소속팀)=기록
1982=박철순(OB)=1.84
1983=하기룡(MBC)=2.33
1984=장호연(OB)=1.58
1985=선동열(해태)=1.70
1986=선동열(해태)=0.99
1987=선동열(해태)=0.89
1988=선동열(해태) 1.21
1989=선동열(해태)=1.17
1990=선동열(해태)=1.13
1991=선동열(해태)=1.55
1992=염종석(롯데)=2.33
1993=선동열(해태)=0.78
1994=정민철(한화)=2.15
1995=조계현(해태)=1.71
1996=구대성(한화)=1.88
1997=김현욱(쌍방울)=1.88
1998=정명원(현대)=1.86
1999=임창용(삼성)=2.14
2000=구대성(한화)=2.77
2001=박석진(롯데)=2.98
2002=엘비라(삼성)=2.50
2003=바워스(현대)=3.01
2004=박명환(두산)=2.50
2005=손민한(롯데)=2.46
2006=류현진(한화)=2.23
2007=리오스(두산)=2.07
2008=윤석민(KIA)=2.33
2009=김광현(SK)=2.80
2010=류현진(한화)=1.82
2011=윤석민(KIA)=2.45
2012=나이트(넥센)=2.20
2013=찰리(NC)=2.48
2014=밴덴헐크(삼성)=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