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29·로시얀카) VS 베로니카 보케테(28·바이에른 뮌헨).' 11년 전 '축구소녀'들의 리턴매치에 16강행 운명이 걸렸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FIFA랭킹 18위)은 18일 오전 8시(한국시각) 캐나다 오타와 랜스다운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여자월드컵 E조 조별리그 최종전, 스페인(FIFA랭킹 14위)과 '외나무 혈투'를 펼친다. E조 4위 한국과 3위 스페인은 1-2차전에서 나란히 1무1패(승점1)를 기록중이다. 2연승인 브라질(승점 6점)이 E조에서 가장 먼저 16강행을 확정지은 가운데 브라질전을 앞둔 코스타리카(2무, 승점2), 한국, 스페인은 16강을 두고 '예측불허' 3파전을 벌여야 한다. 한국, 스페인은 무조건 이겨야 산다. 한국이 이기고, 코스타리카가 지거나 비길 경우 조 2위, 16강 티켓을 딸 수 있다. 한국은 지거나 비길 경우 16강 꿈이 사라진다.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 말 그대로 '외나무 혈투'다.
윤덕여 여자감독은 17일 스페인전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발목부상으로 아껴뒀던 '박라탄' 박은선의 선발 출전을 예고했다. "그동안 박은선의 몸상태를 예의주시했다. 스페인과의 3차전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오늘 마지막 최종훈련 통해 박은선의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개인 면담도 했다. 박은선이 팀을 위해 역할을 해줄 것이다. 선발로 나가더라도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강한 신뢰를 표했다.
박은선이 2003년 미국월드컵 이후 12년만의 월드컵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한국과 스페인의 성인대표팀간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2003년 미국 대회 이후 이번이 월드컵 두번째 출전이고, 스페인은 첫 출전이다. 그러나 박은선은 스페인전의 좋은 기억이 있다. 2004년 11월 14일 태국에서 열린 FIFA 19세 이하 여자월드컵조별리그 C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스페인과 처음 마주했다. 전반 15분, 후반 14분 제이드 보호에게 연속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27분 박은선이 만회골을 터뜨렸다. 1대2로 패했지만 '19세 재능' 박은선의 존재감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킨 경기였다. 1988년부터 스페인여자대표팀 사령탑으로 무려 27년간 '최장기' 집권중인 이냐시오 케레다(65) 감독은 11년 전에도 벤치에 앉았었다. 당시 스페인 멤버 가운데 '캡틴' 베로니카 보케테(28·바이에른 뮌헨), 나탈리아 파블로스(30·아스널레이디스), 루스 가르시아(바르셀로나)이 이번 월드컵에 나섰다. 특히 보케테는 윤 감독이 경계대상 1호로 지목한 선수다. 등번호도 박은선과 같은 9번이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축구소녀들이 11년만에 꿈의 무대, 여자월드컵에서 '9번 전쟁'을 펼치게 됐다.
'대한민국 여자축구 에이스' 박은선은 2003년 6월 8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선수권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해 FIFA 미국 여자월드컵 3경기에 나섰다. 첫 도전은 시련이었다. 브라질(0대3 패) 프랑스 (0대1패) 노르웨이(1대7패)에 3연패했다. 17세 막내로 이 대회에 나섰던 '골잡이' 박은선은 "얼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골을 퍼낸 기억만 난다"고 했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 2005년 동아시아대회 이후 9년 만인 2014년 5월 윤덕여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시련과 편견을 딛고 베트남아시안컵에서 나홀로 6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에 올랐다. 국제무대에 화려한 복귀를 알리며, 한국의 사상 두번째 여자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A매치 총 32경기에서 17골을 넣었다. 1m82의 탁월한 신체조건과 타고난 골 감각을 지닌 박은선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선수다. '지메시'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과의 콤비 플레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은선이 최전방에서 포스트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흔들어준다면, 전가을(27·현대제철), 강유미(24·화천KSPO) 등 발빠른 2선 공격수에게 찬스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
'베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베로니카 보케테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축구선수다. 2014년 FIFA여자발롱도르상 후보에도 올랐던 보케트는 2010년 이후 미국, 스웨덴, 독일 리그를 두루 경험한 베테랑이다. 올시즌 독일 여자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21경기에 나서 7골을 터뜨렸다. 시즌 종료 직후인 지난달 말 '최강' 바이에른뮌헨과 2년 계약을 맺었다. 보케트는 특히 월드컵 소집 직전인 4~5월 물 오른 골 감각을 과시했다. 4월12일 레버쿠젠, 4월16일 프라이부르크전에서 연속골을 터뜨렸고, 4월23일 호펜하임전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틀후인 4월25일 컵대회에서는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5월10일 리그 볼프스부르크전에서도 골을 터뜨리며 3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지난해 캐나다월드컵 유럽예선 체코전에서도 후반 인저리타임 결승골을 터뜨리며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A매치 48경기에서 29골을 기록중이다.
'박라탄' 박은선과 '캡틴' 보케트의 발끝에 16강의 명운이 달렸다. 한국-스페인의 최종전은 월드컵 사상 첫승, 사상 첫 16강과 함께 지난 10년간 양국의 여자축구가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가늠할 무대다. 박은선은 "내일 지면 끝이다. 최선을 다해 꼭 이기도록 한마음 한뜻으로 다같이 노력하겠다"는 강한 결의를 드러냈다. 19세 이하 월드컵에서 만난 보케테를 언급하자 "솔직히 그 선수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골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했다. "당시 스페인전에선 프리킥 골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늘 해온 것과 다름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꼭 이기겠다." 오타와(캐나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