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순간에서 찾아온 위기다. '혼혈 선수' 강수일(28·제주)이 '도핑 파문'에 휩싸였다.
강수일은 지난달 5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테스트 A샘플 분석 결과,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메틸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다. 연맹은 11일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 결과를 알렸다. 메틸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의 일종으로 상시금지약물에 해당된다.
강수일은 도핑 샘플 채취 당시 비고란에 안면부위에 발모제를 일정 기간 발랐다고 신고했다. 그는 11일 도핑 파문이 일자 "콧수염이 나지 않아 선물받은 발모제를 안면부위에 발랐다"고 해명했다.
강수일은 축구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을 앞두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UAE) 평가전, 미얀마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1차전을 치를 23명의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려 A매치 데뷔를 바라봤다. 그러나 청천벽력과 같은 도핑 양성 반응 소식에 결국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12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국민 여러분께서 많은 기대를 해주셨는데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힘들게 간 위치에서 이런 실수로 인해 상황이 이렇게 돼 너무 슬프다"고 덧붙였다. 또 "프로 선수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처해지는 조치에 대해서는 구단과 협의해 대처하겠다.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당초 강수일은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고향인 동두천으로 향했다. 현재 휴대폰을 꺼놓고 칩거 중이라고 한다.
아직 도핑이 확정된 건 아니다. B샘플 추가 분석을 의뢰할 수 있다. A샘플과 B샘플의 분석 결과가 동일한 경우 최종 양성 판정을 받게 된다. 다만,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B샘플 추가 분석 의뢰는 19일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접수해야 한다. 의뢰가 접수되면 24일 B샘플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 분석 일정은 유동적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강수일의 설명이다. 발모제를 얼굴에 발랐는데 도핑에 걸릴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걸릴 수 있다'이다. 사례가 있다. 2010년 한 사이클 선수가 훈련 중 얼굴에 상처가 생겨 성형수술을 받은 뒤 흉터가 남아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모제(미트로겐)를 구입해 발랐다가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됐다. 이 선수는 대회와 관계없이 세계사이클연맹이 실시한 불시 검사에서 금지약물로 규정된 '메텔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다.
억울한 케이스도 있다. 2007년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의 외국인 투수였던 리키 거톰슨가 도핑에 걸렸다. 2년 전부터 복용한 발모제에서 금지약물인 피나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톰슨은 2년 뒤부터 '도핑 선수'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발모제나 탈모치료제로 사용되는 피나스테로이드를 2009년 1월 1일부터 금지약물서 제외했다,
결국 이런 사례들이 있었음에도 도핑에 걸린 것은 부주의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부주의를 통해 금지약물 검사에서 걸린 선수들의 억울한 사연들도 다양하다. 전국종별육상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동네 지인에게서 발목 치료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지네로 만든 알약을 먹었다가 이뇨제 성분이 체내에서 검출돼 제재를 받았다. 같은 대회에 출전한 다른 선수는 경기일에 학교 선배가 건넨 드링크제를 이온음료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마셨다가 흥분제가 검출됐다. 동계체전에서 아이스하키에 나왔던 선수는 감기 때문에 어머니가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남은 감기약을 먹었다가 금지된 베타작용제와 흥분제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