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유희관 입장에서는 의미가 깊은 경기였다.
9일 LG전. 선발로 등판, 5⅔이닝 6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투구수는 111개.
8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에 등극했다.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도 매우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을 보였다.
1회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김용의를 투수 앞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LG의 공격 흐름을 끊었다.
2회는 '백미'였다. 한나한 박용택 이병규(7번)에게 연속 3안타를 맞았다. 발이 느린 한나한 때문에 무사 만루 상황.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유희관은 '각성 모드'를 보였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양석환 유강남 황목치승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물론 유희관의 주무기가 잘 통할 수 있는 우타자였다는 점, 게다가 하위타선이었다는 유리함도 있었다. 그러나 무사 만루의 상황에서 연속 세 타자 삼진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유희관이 리그 최고수준의 위기관리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몸쪽 패스트볼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잡은 뒤 주무기 싱커를 주무기로 삼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희관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2회 위기부터 좀 더 정신이 바짝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실점을 최소화, 경기를 유리하게 이끄는 것은 에이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실제 더스틴 니퍼트가 부상을 당한 입장에서 두산의 시즌 초반 마운드는 유희관이 이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나는 에이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는 투구수가 많았다. 6회 이미 100개가 넘어가 있었다. 결국 6회 2사 이후 볼넷을 허용, 오현택과 교체됐다.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2군 총괄코치에서 두산 투수진에 힘을 보태기 위해 1군에 올라온 한용덕 투수코치가 웃으면서 마운드를 걸어 올라갔다. 유희관의 호투를 격려하는 의미의 미소. 그런데 유희관은 더 많이 던지고 싶어했다. 글러브에 입을 댄 채 한 코치에게 '더 던지고 싶다'는 뜻을 말했지만, 이미 벤치에서 결정이 난 상태.
이때 유희관은 약간 화가 난 듯 보였다. 한 코치가 팔을 잡았지만, 그대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아쉬울 수 있다. 그는 9게임 연속 6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그는 "좀 더 많이 던지고 싶었다. 퀄리티 스타트를 많이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선발로서 이닝을 많이 소화한다는 것은 당연히 매우 긍정적이다.
게다가 실점의 최소화를 고려하는 벤치와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려는 선발 투수 간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유희관의 '돌출행동'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팀 입장에서는 약간 아쉬웠던 행동이다.
일단 벤치의 판단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유희관은 이미 111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6회 던진 패스트볼의 구속은 126㎞. 정상적인 패스트볼 구속보다 6~7㎞ 정도 느렸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2사 이후 볼넷을 허용했다. 그 다음 타석에 들어서는 양석환은 2회 삼진을 당했지만, 4회 유희관의 싱커를 깨끗하게 받아쳐 이때까지 유일하게 타점을 올린 선수. 그동안 뼈아픈 역전패를 많이 당한 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교체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산은 중간계투진이 약하다. 그런데 최근 약간의 변화가 있다. 오현택 이현승 등이 가세했고, 함덕주 윤명준 등의 구위가 괜찮다. 물론 실전에서 결과는 좋지 않지만, 자신감을 얻고 경험이 쌓일 경우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두산의 올 시즌 성적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중간계투진이 어떻게 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없다.
핵심 중 하나는 자신감과 경험(경기운용능력)이다. 경험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자신감의 경우 팀 분위기가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산 입장에서 그런 분위기 조성이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희관의 행동은 아쉽다. 교체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중간계투진에게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유희관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는 불만의 표시지만, 중간계투진에게는 '믿지 못한다'는 해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가뜩이나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중간계투진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 물론 관점에 따라 이런 해석이 과도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라면, '확대해석'의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
올 시즌 유희관은 풀타임 3년 차다. 해를 거듭할 수록 '느림의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느린 구속으로 한계가 있다'는 선입견을 깼다.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면서 이겨낸 흔적일 수 있다.
그의 팀내 위치와 위상은 많이 올라갔다. 이젠 단순한 팀내 선발투수가 아니다. 에이스에 가까운 선수다. 그럴 수록 팀 분위기에 좀 더 진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럴 수 있는 마인드는 갖추고 있는 선수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