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쑤저우세계탁구선수권이 막을 내렸다. 2011년 남자복식 동메달, 2013년 혼합복식 은메달에 그쳤던 한국탁구는 이번 대회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실로 오랜만의 세계선수권 멀티 메달이다. 혼합복식에서 '한중 연합' 양하은(21·대한항공)-쉬신(25·중국)조가 뜻깊은 금메달을 따냈다. 199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 여자단식 현정화 이후 22년만의 금메달이자, 1989년 도르트문트세계선수권 유남규-현정화조 이후 26년만에 따낸 혼합복식 금메달이었다. 남자복식에선 이상수-서현덕(이상 삼성생명)조가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지난 3월 대표팀에 첫 입성해, 첫 세계선수권을 치른 '레전드' 안재형 남자탁구 대표팀은 "쑤저우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양하은-쉬신 뒤 한중 연합 벤치
한중 연합조의 우승 뒤에는 안 코치의 적극적인 역할과 헌신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중국 미녀 탁구스타 자오즈민과 결혼한 한중 핑퐁커플 1호답게 중국어에 능통한 안 코치는 류궈량 중국 감독과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현장에서 첫 호흡을 맞춘 쉬신과 양하은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안재형 남자대표팀 코치가 있어 가능했다. 안 코치는 톱랭커 쉬신과 호흡을 맞추게 된 양하은에게 "긴장하지마, 편하게 해" 식의 흔한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세계랭킹 21위를 물로 보나…, 하은아,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겠지만, 파트너에게 너무 의지해선 안돼.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라고 주문했다. 양하은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양하은은 이번 대회 자신의 약점인 포어핸드드라이브에서 '감'을 찾아냈다. 쉬신의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적극적인 포어핸드 드라이브로 포인트를 따냈다. 금메달보다 값진 수확이다. 안 코치는 "쉬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인 것은 맞지만 연결만 하다보면 소심해진다. 기회가 오면 힘 닿는 데까지 강하게 치라고 조언했다"며 웃었다. 이번 대회 국제탁구연맹이 야심차게 추진한 중국과 다국적연합 중 금메달을 따낸 조는 쉬신-양하은이 유일했다. "한중 연합조에 대한 중국내 관심도 지대했다. 좋은 시도였지만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할 것같았다. 류궈량 감독도, 쉬신도 그 어느때보다 적극적으로 혼합복식에 신경을 썼다"고 귀띔했다.
▶"희망을 본 세계선수권"
안 코치는 이번 대회 선수들의 성장에 의미를 부여했다. 선수들에게 일방적인 메달을 주문하지 않았다. 한단계라도 순위가 높은 상위랭커를 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닥공' 이상수는 64강에서 세계랭킹 6위 드미트리히 옵차로프를 꺾었다. 정영식은 32강에서 '일본 톱랭커' 세계랭킹 5위 미즈타니 준과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김민석은 '세계랭킹 4위' 중국 에이스 판젠동과 2세트에서 듀스 접전을 이어가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16강에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자 이번 대회 단식 우승자 마롱을 맞은 '깎신' 주세혁 역시 투혼의 플레이로 감동을 남겼다. 안 코치는 "짧은 기간동안 선수들이 코칭스태프들이 요구한 대로 움직여준 부분이 만족스럽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3월 말, 협회의 지원에 힘입어 제주도에서 중국 청소년대표 등 1.5군 선수들과 훈련한 부분이 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상수는 기복이 큰 게 단점이지만, 풀리는 날엔 상위랭커를 줄줄이 잡을 수 있는 날카로움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탁구는 상대의 두뇌를 읽어내는 일이다. 경기운영에서 좀더 다양함을 갖고, 상대를 꿰뚫어내는 통찰력과 임기응변 능력을 갖추면 더 발전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영식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능력을 가진 근성있는 선수, 파워가 부족한 부분이 아쉽지만 장점을 살리면 된다. 반응속도가 빠르고 쉽게 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미즈타니와의 경기는 본인에게도 상당히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서브에서 폴트 판정만 없었더라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경기"라고 했다. 이상수와 함께 남자복식 동메달을 따낸 서현덕에 대해선 "랭킹이 100위권 밖으로 나가는 듯 한동안 침체됐던 '왼손 에이스' 현덕이가 이번 대회 부활한 점을 평가하고 싶다. 세계대회 4번만의 첫 메달이라고 들었다. 짧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줬다"고 칭찬했다.
이번 세계선수권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안 코치는 "희망과 가능성"이라고 답했다. "리우올림픽 4강 확률은 현재 전력으로는 50%를 밑돈다. 그러나 이번 대회 분명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체력을 끌어올리고, 남은 기간 최대한 노력해서 확률을 최대치로 높여보겠다"고 약속했다. 선수시절 소문난 '독종'이었던 안 코치는 애제자들에게 단내나는 강훈을 예고했다. "선수들에게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가 아닌 코치인 '내가 만족할 때까지' 훈련을 주문하려 한다. 누가 봐도 저정도면 될 것같다 싶을 때까지 훈련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