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덕아웃에서 코칭스태프가 아무리 현란한 작전을 만들어도, 선수들이 이를 수행해내지 못하면 무의미한 일이 되기 때문. 순간순간 득점, 수비를 성공시킬 수 있는 전술을 창조해내야 하는 농구 종목과 비교하면 야구 감독들에 대해서는 "투수 교체 결정만 내리면 되는 직업"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감독의 행동, 말 하나가 팀 분위기와 경기력 전체를 바꾼다. 덕아웃 모든 코치들과 선수들은 감독 눈동자 돌아가는 방향과 소리도 체크할 정도다. 최근 감독들의 그라운드 안팎 기싸움, 지략대결이 흥미롭다. 이로 인해 팀이 한 경기 결과, 성적이 바뀌니 주요 체크 포인트다.
사실 한국프로야구 전통적인 감독상은 바로 '권위'였다. 조용히 덕아웃 의자에 앉아 수행자처럼 야구만 지켜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권위만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다. 선수들이 젊어지고 개성이 강해졌다. 사회, 문화 트렌드도 그렇다. 야구도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프로야구 감독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변신하고 있다.
먼저 '야신'이라고 불리우는 최고령 감독과 막내 감독이 제대로 한판 붙었다.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도중 한화 투수의 빈볼이 나오자 올해 감독으로 데뷔한 롯데 이종운 감독이 대선배 김 감독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격. 하지만 이 감독을 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 롯데 내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 선수들을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발언에 선수들은 "감독님께서 우리를 믿고 아껴주시는게 느껴진다"라며 더욱 파이팅을 외쳤다는 후문. 여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 사건으로 프로야구 흥행에 엄청난 불이 지펴졌다. 프로 스포츠에서 이런 신경전은 필수 요소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강하고 독했다던 한화 김성근 감독도 최근 새 컨셉트로 인기몰이 중이다. 당시 이 감독의 격한 반응에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큰 장외 신경전이 벌어질 뻔한 일. 하지만 '부드러운 남자'로 컨셉트가 바뀌었다. 이 뿐 아니다. 최근 경기 중 본헤드 플레이로 대형사고를 친 포수 정범모를 따뜻하게 감쌌다. 여기에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하는 권 혁을 위해 경기 중 마운드에 직접 올라가 할아버지가 손자를 달래는 듯한 뭉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화도 달라지고 있다. 선수를 야구 기계로만 만드는줄 알았던 카리스마 감독이 자신들을 위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지자 한발이라도 더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이와는 반대로 '온화함의 상징'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은 최근 충격적인 외도(?)를 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파울성 타구가 비디오 판독을 거쳐서도 홈런으로 판정이 나자 격한 항의를 벌이던 끝에 퇴장 판정을 받았다. 0-3 스코어 2회였다. 충분히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경기 초반이지만 김 감독은 퇴장을 작정하고 항의를 펼쳤다. 당시 분위기가 처진 선수단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후문이 뒤를 이었다.
'열혈남아'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은 잠실 그라운드 바닥에 드러누웠다. 상대 주자의 3피트룰 위반을 항의하기 위해 직접 바작에 누워 거리에 대한 퍼포먼스성 항의를 한 것. 결과는 경기 지연 행위로 인한 퇴장. 하지만 김 감독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은 '열혈' KIA팬들과 코드가 맞았다. KIA팬들은 최근 수년간 너무 소극적이었던 KIA 선수단 분위기에 지쳐있었다. 하지만 힘찬 감독 아래 선수들도 변하고 있다. 팬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꼴찌 후보라고 비아냥을 받던 김기태호는 깜짝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막내 kt 위즈의 '상남자' 조범현 감독도 최근 눈물을 보였다. 개막 후 홈에서 8연패를 하는 충격을 당하다 SK 와이번스를 꺾고 기다리던 홈 첫 승리를 따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던 조 감독이지만 정말 고대했던 승리가 찾아오자 감정이 북받쳤다. 그라운드에 나가 수원 홈팬들에게 처음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덕아웃에 돌아온 조 감독의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팬들은 이런 조 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