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드림 걸즈'는 무명에서 스타로 발돋움하는 아가씨들의 이야기다. 1950, 60년대 흑인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한 모타운 레코드사와 모타운의 간판이었던 여성 트리오 슈프림즈(The Supremes)가 모델이다. 가시밭길을 헤쳐 수퍼스타의 꿈을 실현해간다. 이들 작품 속 캐릭터처럼 실제로 이 뮤지컬을 통해 꿈을 이룬 배우가 있다. 주인공 에피 역을 열연 중인 배우 최현선(33)이다.
"오디션 합격 통지를 전화로 들었는데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거예요. 이게 뭐지? 내가 정말 주인공이 된건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어요. 무대에 10번 넘게 섰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아요."
단국대 뮤지컬과를 졸업한 최현선은 2006년 '넌센스'로 데뷔했다. 두 세 역할을 연습해서 이따금 주연 배우 대신 무대에 서는 '스윙(swing)'. 그 뒤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모두 단역이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역들을 보면서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러다 2013년 초연된 창작뮤지컬 '해를 품은 달'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조연이었던 무녀 장씨 역을 맡아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뿜어내 관객들로 하여금 팸플릿을 뒤지게 만들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09년 '드림 걸즈' 국내 초연 당시 오디션에서 떨어진 한을 6년 만의 재도전에서 시원하게 풀었다.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자식으로서 효도를 한 것 같아 흐뭇했어요. 게다가 실컷 먹어도 되는 주인공이 흔하지는 않잖아요?(웃음)"
최현선이 연기하는 에피는 '드림 걸즈'의 리드싱어였지만 정식 데뷔를 앞두고 자신보다 '비주얼'이 좋은 디나에게 그 자리를 뺏긴다. 매니저에게 격렬하게 항의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애물단지가 되어 사고만 일으키다 팀에서 쫓겨난다. 홀로 딸을 키우며 힘겨운 생활을 하던 에피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되고 제 2의 인생을 개척해나간다.
"첫 주연작이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 행복하죠. 파란만장한 에피의 삶이 저와 많이 닮은 것 같아 연기하다 울컥할 때가 많아요."
에피가 되어 무대에 서면 10년 동안 고생하다 첫 주연을 꿰찬 자신의 삶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특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부르는 '나는 변했어요(I am changing)', 그리고 이 작품의 대표곡인 '원 나잇 온리(One night only)'를 부를 때면 감정을 절제하기가 쉽지 않다. "연기의 감정선과 노래의 에너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이 작품을 하면서 연기의 폭을 더 넓혀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최현선의 힘은 무엇보다 폭발적인 가창력이다. 평소 갈고 닦았던 소울 실력을 맘껏 뽐내며 에피의 고통, 변모,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지난 28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에 함께 출연 중인 윤공주 유지 박은비 등 동료배우들과 함께 출연해 노래 솜씨를 과시하기도 했다.
"'드림 걸즈'를 하면서 사람들이 조금 더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시작일뿐이죠. 부족한 점도 더 많이 알게 되고,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더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어요."
'어디에서나 제몫을 하는 배우'를 좌우명 삼아 10년을 달려온 최현선. 그녀의 '드림'은 이제 막 시작됐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