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것일까.
울산의 질주가 3경기 만에 멈췄다. 전남과의 홈 경기서 무득점 무승부에 그쳤다. 앞서 FC서울과 포항을 상대로 6골을 터뜨렸던 가공할 득점력이 자취를 감췄다. 2경기서 평균 5개였던 유효슈팅은 전남전에서 단 1개(전체슈팅 7개)에 그쳤다. 후반 막판 김신욱이 기막힌 오른발 트래핑에 이은 터닝 논스톱슛으로 골문을 위협한 게 그나마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후반 20분 김태환이 비신사적 플레이로 퇴장 당해 수적 우위를 점한 전남이 오히려 수비를 강화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패할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단독선두로 3월 A매치 휴식기에 돌입하기를 내심 바랐던 울산 팬들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만했다.
밀집수비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 노상래 전남 감독은 수비에 이은 카운터를 들고 나왔다. 울산의 강력한 공격력에 맞서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울산은 지난 2경기와 마찬가지로 수비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도 측면을 활용한 공격을 전개하는 패턴을 펼쳐보였다. 양동현의 포스트플레이와 따르따, 제파로프, 김태환의 2선 공격이 펼쳐졌다. 그러나 수비적으로 나선 상대를 제대로 몰아붙이지 못했다. 오히려 밋밋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전반 초반부터 상대에게 역습 찬스를 내주며 실점 위기를 맞기도 했다.
틀이 깨지자 이를 제대로 메우지 못하는 모습도 드러났다. 김태환 퇴장 뒤 윤 감독은 따르따 대신 김신욱을 투입하면서 중앙에 공격력을 집중시키고 측면 오버래핑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기본 3명에 더블 볼란치(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가세했던 기존의 공격과는 차이가 있었다. 김신욱-양동현 '트윈타워'에 대한 의존도는 컸지만, 이에 걸맞는 효율적인 형태를 보여주지 못했다.
심리전에서도 밀렸다. 전남은 이날 빠른 발과 과감한 몸싸움으로 울산 선수들을 괴롭혔다. 이 과정에서 울산 선수들은 냉정함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벤치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김태환의 퇴장 장면도 이종호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화를 참지 못해 벌어진 장면이었다. 앞으로 울산을 상대할 대부분의 팀들이 비슷한 전략으로 나설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악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슈틸리케호 합류를 앞둔 골키퍼 김승규는 '미친선방'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전반 11분 김동철의 중거리포를 시작으로 스테보 이종호를 앞세운 전남의 공세에 맞서 신들린 선방쇼를 펼쳤다. FC서울, 포항전에 이어 전남전에서도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준 김승규의 활약은 울산 수비진의 부담을 덜기에 충분한 요인이었다. 포항전에 이어 다시 가동된 양동현-김신욱 조합의 위력도 여전했다.
윤 감독은 "퇴장 이후에도 전남이 내려설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공격과 수비를 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준비기간이 짧았음에도 팀이 이렇게 다져진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 감독은 "김신욱의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오늘 경기에서도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선수, 위협적인 선수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며 "A매치 휴식기 동안 몸을 잘 만든다면 4월부터는 훨씬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