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선수의 가치가 높아지면, 팀이 강해지죠."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올 시즌 유독 '선수의 가치'를 많이 언급한다. 선수 기용에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유격수 포지션에 도전한 윤석민, 그리고 해외진출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3루수 겸업을 시도중인 박병호, 마지막으로 옛 포지션인 2루수로 투입돼도 수준급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김민성까지. 넥센 내야에는 '대변혁'이 있었다. '멀티 포지션' 바람이다.
여기엔 비시즌 내내 준비한 부분도 있었고, 갑작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윤석민과 박병호의 경우 스프링캠프 내내 훈련을 해왔고, 김민성은 2루수 서건창의 부상으로 모처럼 2루수로 나섰다. 염 감독은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선수 개개인의 가치를 얘기한다.
일단 주전 유격수 경쟁중인 윤석민. 장타력을 갖춘 윤석민이 1루와 3루수 백업이 아닌, '그 공격력으로 주전 유격수가 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의 유격수 전환은 아직까진 성공적이라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염 감독은 "만약 석민이가 주전 자리를 뺏기더라도 본인이 유격수가 가능해졌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윤석민은 일발장타력을 갖춘 내야수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 시절을 비롯해, 넥센 이적 후에도 백업멤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전'으로서 한 시즌을 소화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일 지 모르는 선수다. 강정호의 이적으로 인한 유격수 공백은 분명 그에겐 기회다.
박병호는 LG 트윈스 시절 3루수도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1군 선수이자, 주전 선수로 떠오른 넥센 이적 후에는 붙박이 1루수였다. 염 감독은 이런 박병호에게 부임 직후부터 3루 수비를 간접 경험시켰다. 내야 펑고를 받을 때, 1루가 아닌 3루에서 받게 한 것이다.
3년 전과 달리, 이젠 직접 3루수로 나선다. 이번 스프링캠프가 그 전환점이었다. 박병호를 3루수 백업으로 써, 내야진 운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팀은 물론, 해외진출을 앞둔 박병호에게 '3루도 가능한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기 위함이다.
김민성의 경우에는 서건창의 부상으로 시범경기 기간 2루수로도 나섰다. 사실 서건창 등장 전, 넥센의 주전 2루수는 김민성이었다. 하지만 그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신고선수 서건창이 그 자리를 꿰차고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물론 김민성이 3루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모두가 웃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염 감독은 김민성에게 "2루수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주문한다. 2루수로서 김민성의 타격 능력이 가진 장점이 배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2루수 자리에는 중심타자들이 많지 않다. 타점 능력을 갖춘 김민성이 3루에서 골든글러브를 타지 못해도 같은 성적으로 2루수 골든글러브는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염 감독은 "FA가 됐을 때, 3루 뿐만 아니라 2루가 된다면 선수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팀에선 건창이가 있어 2루수 김민성이 큰 역할을 못해도, 다른 팀에 가면 주전 2루수를 맡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염 감독은 이렇게 선수의 가치를 높이는 일도, 결국은 선수가 해내야 할 수 있다고 봤다. 감독이나 코치의 역할은 선수들에게 '왜 해야 하는가'를 얘기해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약 그렇게 선수의 가치가 높아지면, 팀이 강해진다. 선수 선발과 2군 육성 시스템부터 선수의 최고 가치를 뽑을 수 있는데 초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