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는 강렬한 반전이 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렇게 됐다. 심리적 입장이나 경기 사이클의 측면에서 볼 때 확률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프로농구 플레이오프를 대비해 '오늘의 니갱망'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인터넷 상에서 많이 쓰는 단어. 강을준 감독이 LG 사령탑 시절 작전타임 때 자주 얘기했던 '니가 갱기를 망치고 있어'의 줄임말. 최근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를 지칭하는 단어로 스포츠계에 폭넓게 쓰인다.
사실 패자를 희화화할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코너 이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패자를 폄훼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의도는 두 가지다. 일단 독자가 궁금한 패자의 입장도 알려주자는 취지. 또 하나는 부진에 대한 강렬한 자극제로 작용, 더욱 분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할 정도의 선수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기량과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강 플레이오프 동안 총 5차례의 '주인공'을 불가피하게 선정해야만 했다.
LG와 오리온스 1차전 이현민, 2차전 김시래, 3차전 리오 라이온스, 4차전 문태종, 그리고 SK와 전자랜드 2차전 박승리였다.
이현민은 1차전에서 부진했다. 22분23초를 소화하며 2득점, 4어시스트에 그쳤다. 당시 그가 부족한 부분은 두 가지. 일단 득점력 자체가 평소보다 많이 저조했다. 그리고 김시래에게 너무 많은 득점을 허용했다. 당시 LG는 외곽에서 스위치 디펜스와 함께 오리온스 2대2 수비에 대해 적극적인 체크를 했다. 결국 이현민에게 득점찬스가 많이 나지 않았다. 포인트가드 특성상 공격보다는 패스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비 역시 이현민과 빅맨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결국 2차전 그는 김시래를 묶는데 성공했다. 자신도 5득점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7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오리온스 승리에 기여했다.
덕붙에 2차전의 불명예는 김시래가 지게 됐다. 그는 1차전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2차전에서 상대가 준비한 2대2 수비에 자신의 공격이 막혔고, 속공에서도 여러차례 패스미스가 나왔다.
그는 3차전 직전 필자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2차전 '오늘의 니갱망'에 대해 필자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김시래는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죠"라고 한 뒤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오리온스 2대2 수비를 뚫기 위해서는 더 깊은 드리블과 돌파가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팀 공격 밸런스가 깨진다. 이런 고민이 있었던 경기였고, 잘 풀리지 않으면서 속공패스 미스도 나오게 됐다"고 말한 뒤 "어떻게든 깨야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에는 3차전의 복선이 깔려 있었다. 제퍼슨의 5반칙 퇴장 이후 김시래는 4쿼터 결정적인 3점포와 골밑돌파로 LG의 짜릿한 역전을 이끌었다. 사실상 경기내용은 오리온스가 우위에 있었지만, 막판 김시래가 끝낸 경기였다. "어떻게든 깨야할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코트에서 재현되는 순간, 필자의 온 몸에는 짜릿한 전기가 흘렀다.
3차전에서는 리오 라이온스가 있었다. 그는 3쿼터이 끝난 뒤 불필요한 행동으로 벤치 분위기를 흐트러뜨렸다. 출전시간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 부분은 라이온스가 명백히 잘못한 부분이다. 들쭉날쭉한 출전시간과 풀리지 않는 경기 때문에 짜증이 날 수 있다.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무대가 플레이오프라면 더욱 더 집중해야하고 희생정신도 필요하다.
사실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인터뷰다. 정말 쉽지 않은 부분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질문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구단 홍보팀에 부탁해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의 경우, 더 복잡했다. 홍보팀에서도 컨트롤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예상했고, 각오했던 부분이다.
3차전이 끝난 뒤 그의 인터뷰를 듣기 위해 곧바로 오리온스 라커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0여분을 기다린 뒤, 라커룸에서 빠져나오는 김도수에게 이미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최은동 통역에게 부탁했지만, 그도 라이온스와 전화가 되지 않았다. 당시 기사에 '연락두절'이란 표현은 이렇게 나온 것이다. 그가 잠적했거나, 잠수를 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연락두절 앞에 일시적이라는 표현을 붙였다면 오해가 없었을 것이다. 기자의 불찰이다.)
그는 4차전 심기일전했다. 스타팅 멤버로 나온 그는 24분14초를 뛰면서 15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길렌워터의 체력 세이브를 완벽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승부처에서 강렬한 골밑돌파로 제퍼슨의 체력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날 가장 부진한 선수는 문태종이었다. 사실 3, 4차전 모두 컨디션은 바닥이었다. 특히 이날 30분을 뛰면서 3득점.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10%의 야투율이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상대(김동욱)의 타이트한 마크에 체력부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 때문에 슛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 맞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5차전 강렬한 복선을 깔았다.
"5차전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했다. 역시 달랐다. 초반부터 가속도를 높인 그는 34분을 뛰면서 19득점, 12리바운드, 4어시스트, 3블록슛이라는 엄청난 반전을 이뤄냈다. 야투율은 무려 75%. 정말 무서운 선수였다.
전자랜드와 SK전은 한 차례밖에 선정하지 못했다. 2차전 박승리였다. 그는 당시 23분을 뛰면서 6득점, 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수비가 뛰어난 선수이고, 집중도도 좋은 선수다. 하지만 막판 포웰 수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포웰이 선호하는 왼쪽 돌파를 열어주지 않고 골밑에서 협력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때문에 포웰에게 4쿼터 막판 결정적인 골밑돌파를 허용한 것은 SK 수비력의 약점이지 온전히 박승리의 책임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1차 저지에 실패했고, 또한 결정적인 자유투도 놓쳤다. 이 경험이 분명 자신의 커리어에 많은 자산이 될 것으로 믿는다.
박승리를 제외하고, 모든 '오늘의 니갱망' 주인공들은 나름의 반전을 썼다. 특히 김시래와 문태종의 반격은 너무나 짜릿했다.
4강전을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있다. '오늘의 니갱망'은 플레이오프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