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기 예능프로 '해피선데이 - 1박2일 시즌3'가 음주 산행 논란에 휩싸였다.
15일 방송된 '1박 2일'에서는 멤버들이 '봄맞이 야생충전 등산여행'이 전파를 탔다.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 해발 1,572.9m에 달하는 태백산맥의 고봉 중 하나다. 아직까지 영하의 추운 날씨에 눈까지 쌓인 터라 만만치 않은 도전. 멤버들은 등산 프로젝트에 대해 투덜댔다. 하지만 분위기는 금세 변했다. 유호진 PD는 멤버들을 향해 "해빙될 때의 등산은 위험할 수 있어 전문가를 모셨다"고 운을 뗐다. 깜짝 등장한 멤버는 다비치 강민경. 멤버들은 반가움에 환호성을 질렀고, 이내 씩씩하게 눈 덮인 산을 올랐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강민경은 멤버들이 '산에 오를 때 꼭 가져가야 하는 것이 뭐냐'고 묻자 망설임없이 "술"이라고 답했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 "간식을 싸왔다"며 멤버들에게 휴식을 제안했다. 데프콘은 간식이라는 말에 강민경의 배낭을 뒤졌다. 빵을 꺼낸 데프콘은 배낭 속 막걸리를 발견하고 "이게 뭐냐"고 소리쳤다. 돌발 상황에 강민경은 데프콘을 살짝 막아섰지만 결국 막걸리와 함께 종이컵이 나왔다. 의외의 발각에 어쩔 수 없다는듯 강민경은 "(막걸리를) 많이 먹으면 힘드니까 한 잔 정도만 하자"며 동료들과 나눠마셨다. 막걸리 1병을 나눴으니 대부분 종이컵 한잔을 넘지 않는 소량이었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산행 중 술 마시는 장면을 의식한 듯 '딱~~~한 잔 정도?!'라는 자막을 안전장치로 삽입했다.
하지만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편집되지 않은채 전파를 타자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비판적 시청자들은 '음주 산행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한잔을 마시다보면 여러잔이 될 수 있다. 특히 아직 위험한 봄철 산행에 자제돼야 할 음주 산행 장면이 공중파 방송에서 전파를 타는 건 문제'라고 주장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산행 중 과음은 안되지만 단지 목을 축일 정도였다. 이 정도를 문제 삼는 건 지나치다'고 옹호론을 펼쳤다. 이들은 '막걸리 한병으로 여러명이 목 축이는 정도로 마시는 건 등산에서 일상적 모습이다. 리얼 예능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사전에 준비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한잔씩 하게 된 것이다. 불편하게 보신 시청자분들께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핵심은 '음주' 자체가 아니다. 음주 장면은 최근 유행하는 수많은 리얼 예능에서 숱하게 등장한다. 양을 얼마나 먹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소량이든 다량이든 음주가 맨정신으로도 여러가지 부상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산행과 연결됐다는 점이다. 최근 '리얼 예능'은 예능 프로그램의 주류다. 연예인들의 자연스러운 실제 모습을 시청자들은 재미있게 시청한다. 그만큼 흡수력이 빠르다. 재미있는 시청을 통해 남은 강렬한 인상은 자칫 모방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침소봉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방송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 방송 후 가족 여행이 부쩍 늘어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 산을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은 갈증을 달랠 겸 한잔씩 한다. 대부분 큰 문제의식 없이 하는 행동. 하지만 썩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이 공중파 전파를 타는 건 별개의 문제다. 공공기관에서는 음주 산행 자제 캠페인을 하고 있는 상황. '안전 문제'는 보수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음주산행은 분명 안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100% 통제할 수 없는 리얼 예능의 특성상 배낭에서 막걸리가 우연찮게 발견되고 멤버끼리 나눠먹는 것까지야 어쩌겠는가. 단, 가급적 자제돼야 할 관행이므로 실제 방송에서는 아깝더라도 편집 과정에서 눈 딱 감고 삭제하는 편이 바람직 했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억울한 측면이 분명 있다. '사실 리얼 예능이란게 이것 빼고 저것 빼면 진짜 모습은 언제 보여줄 수 있느냐. 리얼예능을 표방하면서 자칫 기획예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실제 리얼 예능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날것'이 던지는 예측불가의 신선함 덕분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존폐가 걸린 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일선 PD들은 소위 'FM'대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만은 없는 것도 현실이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강민경이 깜짝 출연한 '1박2일'은 '재미 있었다'는 호평 속에 지난 주보다 2.1% 오른 14.4%(수도권 14.6%)의 높은 시청률로 동 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이번 논란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시작됐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발단이 너무나도 사소했기에 역으로 일선 PD들에게는 더 '큰 숙제'를 던지게 될지 모른다. 프로그램의 '대중성'과 '사회적 책임'의 경계선상에 선 예능프로 제작진으로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