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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인국 "생애 첫 사극 연기, 정말 짜릿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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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국은 소화력이 참 좋은 배우다. 어떤 작품이든 꼭꼭 씹어 삼켜서 기어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버리고야 만다. 그를 단박에 배우로 각인시킨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그랬고,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고교처세왕'이 그랬다. 첫 영화 '노브레싱'에선 풋내 나는 청춘의 얼굴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 호평 받았다. 그 흔한 '연기력 논란'도 서인국에겐 늘 '해당사항 없음'이다.

그래도 이번엔 살짝 걱정을 했다. 성장통을 겪듯 중간에 한번쯤은 덜컹거리지 않을까. 지상파 드라마 첫 주연, 생애 첫 사극, 더구나 1000만 영화로도 익숙한 광해 캐릭터 아닌가. 그야말로 난이도 최상급. 그런데 서인국은 또 한번 보란 듯이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의 '연기 성장판'은 좀처럼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KBS2 '왕의 얼굴' 종영 후 마주한 서인국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유롭고 수더분했다. 치열했던 현장의 흔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사극 연기가 고되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에너지 소비가 굉장히 크더라"며 입을 뗀다. "체력이 바닥이 나서 요즘에 미친 듯이 먹고 있어요. 몸무게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죠. 그렇게 마음 편하게 쉬었더니 살이 좀 붙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아주 조금 무뎌진 것도 같다.

'왕의 얼굴'은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겪으며 진정한 군주의 길을 찾아가는 광해의 성장 스토리와 한 여인을 두고 삼각관계에 놓인 아버지 선조와 아들 광해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서인국은 '광해' 캐릭터에 매료돼 이 작품을 선택했다. "그동안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광해를 다뤘지만 주변인물에 머무르거나 왕좌에 오른 이후의 이야기를 그렸잖아요. 광해의 성장을 본격적으로 그린 건 '왕의 얼굴'이 유일무이하지 않나 싶어요. 광해의 입장에서 전란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무척 재밌었어요.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도 흥미로웠고요."

대사를 할 때마다 뿌연 입김을 내뿜게 하는 한겨울 강추위,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야 했던 촬영 스케줄, 낯설고 불편한 사극 복장. 어려움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특히 입에 붙지 않는 단어 '아바마마'가 꽤나 속을 썩였다. "수염을 붙이면 입술이 잘 안 움직여요. 추위에 입까지 얼어버리면 진짜 최악이죠. 아바마마는 지금도 발음이 안 돼요. 대사도 워낙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지금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어요.(웃음)"

대사 시범까지 보이며 괜한 엄살을 부리지만 사실 속으로는 짜릿한 여운을 즐기고 있다. 순식간에 밝아지는 서인국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사극 연기는 그동안 해왔던 연기와는 접근부터 달라서 색다른 쾌감을 느꼈다. "현대극에선 캐릭터에 제 실제 모습을 담아내곤 했어요. 제 습관을 반영하면 캐릭터를 생활감 있게 그려낼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사극은 그럴 수 없잖아요. 대본대로만 연기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어느날 촬영 중에 한 선배님께 여쭤봤어요. 사극은 정말 '연기'인 것 같다고요. 그러자 선배님이 '재밌지?' 되물으시더라고요. 정~말 재밌었어요. 진짜! 진짜!"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을 겸비했는데, 거기다 즐기기까지 했으니 서인국을 어떻게 당해내겠나. '역대 광해 리스트'에 서인국표 광해를 추가해도 좋겠다. "시청자들께서 과한 칭찬을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항상 아쉬움은 남아요. 놀러갔다 와도 좀 더 재밌게 놀걸 하는 후회가 남잖아요. '왕의 얼굴'에서도 너무 심각했던 건 아닌가 하고 저를 돌아봤어요. 스스로 실망하지 않으려면 다음엔 더 잘해야죠."

벌써부터 차기작 제안이 밀려든다. 하지만 당분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난 뒤에 행보를 결정할 생각이다. 그 전에는 잠시 무대로 돌아와 일본에서 앨범을 발표한다. 설 연휴 막바지 주말에 일본 프로모션을 떠났다. 이번 앨범은 좀 특별하다. 타이틀곡을 서인국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 "내 감성으로 팬들과 교감할 수 있을지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다"며 기분 좋은 긴장감을 털어놓는다. 곡 제목은 '라스트 송(Last Song)'. 당신을 위한 마지막 노래라는 의미. 혹시 그의 경험담은 아닐까? "제 얘기를 가사에 넣는다면 너무 한정적일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 제 얘기를 쓰고 싶진 않아요. 저의 사랑 얘기는 나이를 많이 먹은 뒤에 '그땐 그랬지' 하면서 멋있게 들려주고 싶어요."

배우의 얼굴로 익숙했던 서인국은 어느 새 뮤지션으로서도 한 뼘 성장해 있었다. 일본 앨범을 위해 자작곡을 준비한 게 아니듯, 한국에서의 앨범도 '이때다 싶은 시기'에 맞추려 무리해서 발표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연기든 음악이든 감성의 이끌림"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어떤 색을 입혀도 잘 어울리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목표"라는 서인국. 배우와 가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변신이야말로 카멜레온 같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