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의 50%가 날아갔어. 최악…그래도 방법을 찾아야지."
그날 밤. 노(老) 감독은 술잔 앞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평소와 달리, 두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찬 술을 아무리 마셔도 답답하고 끓는 속이 시원해지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다친 제자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된 팀 전력의 손실. 게다가 그 손실을 어떻게 만회할 지에 대한 고민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73)이 많은 숙제를 가슴에 묻은 채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를 마쳤다. 김 감독은 과연 고치 캠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고치 캠프, 만족스럽지 못하다
한화는 지난 1월15일부터 2월14일까지 고치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치렀다. 그 유명한 '김성근식 지옥훈련'이 쉴 새없이 이어졌다. 고치에서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아침 특타조에 편성된 선수들은 아침 7시부터 훈련을 시작했고, 야간훈련은 보통 9시가 넘어서 끝났다. 선수들은 숙소에 돌아오면 그대로 침대에 파묻히기 일쑤. 수비 훈련을 하다보면 유니폼은 금세 흙투성이가 됐다. 매일 수 백번씩 스윙을 하느라 타자들의 손바닥은 온통 붕대와 반창고로 도배가 돼 있었다.
훈련의 효율성을 위해 캠프 기간 내내 '도시락'이 점심 메뉴로 제공됐다. 선수들은 빈틈없이 짜여진 훈련스케줄을 소화하다 잠깐씩 틈이 나면 20분 이내에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다음 훈련스케줄을 소화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한 달에 대해 김 감독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게 없지 않나. 계획이 많이 틀어졌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김 감독의 아쉬움도 이해가 된다. 고치 캠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베스트 멤버'로 운용되지 못했다. 이태양 유창식 박정진 윤규진 등은 부상 때문에 고치가 아닌 오키나와 재활캠프에서 몸을 만들다가 뒤늦게 고치로 들어왔다. 이용규와 최진행 송광민 등 오키나와 재활캠프의 야수진은 끝내 고치에 오지 못했다.
또 배영수와 송은범은 고치 캠프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종아리와 무릎 쪽 통증이 생기는 바람에 열흘 동안 오키나와에 갔다와야 했다. 외국인선수 나이저 모건도 캠프 합류 후 일주일여 만에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다. 이런 식으로 주전급 멤버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김 감독의 훈련 계획도 틀어진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정근우 부상, 전력 50%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김 감독의 마음을 무겁게 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정근우의 부상. 하필 고치 캠프 종료 하루 전날인 13일에 다쳤다. 고치 하루노구장에서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 2군과의 연습경기를 치르던 중 하악골(아래턱뼈)이 부러진 것. 정근우는 이날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는데, 1회말 수비때 더블플레이를 위해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다가 1루수가 던진 공에 턱을 맞았다. 송구가 타자의 헬멧에 스치면서 방향이 갑자기 틀어져 막거나 피할 수 없었다.
이닝 종료 후 교체된 정근우는 곧바로 인근 병원에서 CT 촬영을 했다. 결과는 하악골 골절. 일단은 단순 골절로 판명됐는데, 김 감독은 더 정확한 진단과 안정적인 회복을 위해 정근우의 귀국을 결정했다. 동료들이 오키나와 2차캠프로 떠난 15일. 정근우는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김 감독은 무척 아쉬워했다. "근우가 다친 날 밤에 너무 속상해서 두 시간이나 술을 마셨어. 그러면서 '또 김성근 인생에 시련이 오는구나' 싶더라고." 수화기 너머로 그 상실감이 여과없이 전해졌다.
정근우는 김 감독이 2006년 말 SK 지휘봉을 잡고난 뒤 키워낸 애제자다. 함께 영광의 시절을 보냈다가 세월이 지나 다시 한화에서 만난 사이. 정근우는 고치 캠프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지옥훈련'의 조교같은 존재였다. 김 감독은 이런 정근우가 다친 것을 두고 "전력의 50%가 날아갔다"고 했다.
큰 아쉬움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과장된 표현이지만, 실제로 정근우의 부상이 한화의 공수 양면에서 매우 큰 손실인건 맞다. 국가대표급 수비력의 2루수이자 동시에 선구안과 장타력, 도루 능력까지 갖춘 타자. 정근우는 '대체불가'의 선수다. 김 감독의 상실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실망의 끝에서 희망을 본다
고치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 감독은 다시 오키나와에서 2차 캠프를 치른다. 엄선한 40명의 선수들과 함께 15일부터 실전 위주의 훈련을 한다. 3월3일까지 17일 동안 고친다 구장에서 훈련을 진행하는데, 국내외 팀과 총 9차례의 연습경기가 예정돼 있다.
김 감독은 "다시 잘 만들어봐야지"라며 오키나와 캠프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다시 만든다'는 행위는 김 감독에게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늘 힘든 일이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오지 않았나싶어. 잘 안되고, 힘들 때 다른 방법을 궁리하고 찾아왔으니까. 이번에도 고치 캠프가 잘 안됐고, 다친 선수도 있는데 방법을 찾아봐야지"라며 오키나와에서도 한화의 변신을 꾸준히 이끌겠다고 밝혔다.
실전 위주의 오키나와 캠프에서는 팀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을 바탕으로 좀더 직접적인 개선점을 찾게 될 수 있다. 일단은 고치에서 김 감독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많은 기회를 얻게될 것으로 보인다. 신인투수 김민우나 외야 변신을 모색 중인 박노민, 그리고 근성을 인정받은 오 윤, 강경학, 지성준, 황선일 등이 주목된다.
여기에 더해 당장 시급해진 '정근우 공백'의 대안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정근우가 복귀하기 전까지 최소한 수비에서라도 빈틈을 메워줄 인물이 필요하다. 고치 캠프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이창열이나 강경학 등 내야 요원들의 분발이 시급하다. 김 감독은 "오키나와는 고치보다 따뜻하니까 좀 더 많이 할 수 있겠지"라고 말했다. 당연히 '훈련'에 관한 말이다. '지옥캠프'는 오키나와에서도 계속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