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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들꽃 인생' 이광종 감독, 다시 일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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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생명력과 소박한 아름다움, 들꽃이 지닌 미학이다. 그러나 세상은 눈길을 주는 데 인색하다.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들꽃이 수두룩하다. 이름이 생기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이광종 감독(51)은 그라운드의 들꽃이었다. 만개하기까지 무려 14년이나 걸렸다. 이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권대회(20세 이하)였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으로 불리는 대회다. 2000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 1기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수석코치로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원칙을 지켰던 기억은 지울 수 없다. 코치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한다. 그도 그랬다. 질문을 하면 대답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감독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분위기는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선수들을 따뜻하게 품에 안았다. '어머니' 역할을 했다.

축구판은 보수적이다. 무명의 선수가 지도자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만큼 어렵다. 전직이 체육교사인 조제 무리뉴 첼시 감독(포르투갈)이 한국 축구계에서 탄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유공(1987~1995년)과 수원(1996~1997년)에서 266경기에 출전, 36골-21도움을 기록했다. 소리는 없었지만 성실한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A급 지도자의 보증수표인 국가대표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엄청난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감독은 2005년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도 박성화 감독과 함께한 후 2007년 17세 이하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유소년 지도자로 쌓은 노하우가 인정됐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이었다. 감독은 철저하게 성적과 싸워야 한다. 이 감독은 더 절박했다. 그의 이력으로는 한 번 실수면 사실상 '재기 불능'이었다.

더 고독하게 세상과 맞섰다. 단 한 차례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한 우물만 팠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선수들에게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가갔다. 혼란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정확하게 맥을 짚어가며 조련했다.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2009년 FIFA U-17 월드컵 8강, 2011년 U-20 월드컵 16강, 2013년 U-20 월드컵 8강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성역'은 존재했다. 누가 보더라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사령탑은 그의 몫이었다. 제도권은 다시 그에게 의문부호를 달았다. 지지와 반지지 세력으로 나뉘었다. 감독 선임을 놓고 충돌이 있었다. 돌고 돌아 접점을 찾았다. 2013년 11월 그는 인천아시안게임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1년 단기계약이었다. 아시안게임 성적을 지켜본 뒤 계약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뜻이었다. 반전은 화려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 결승에 오르기까지 비난 여론도 팽배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광종 꽃'을 피웠다. 14년 만에 탄생한 '무명의 빛'이었다. '제2의 이광종'을 꿈꾸는 음지의 지도자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더 이상 이견은 물론 논란도 없었다. 이 감독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대표팀에 무혈입성했다. 자만하지 않았다. 들뜨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 겸손하게 올림픽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신의 시샘이 가혹해도 너무 가혹했다. 이 감독은 현재 병상에 누워 있다. 급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다. 하지만 이 감독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처절했길래, 이같은 병마가 덮쳤을까. 아픔이 몰려온다.

감독은 외롭고, 고독한 자리다. 매 순간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해소할 길도 많지 않다. 이 감독은 웬만해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스스로 삼킨다. 올림픽이라는 더 큰 무대를 앞두고 면역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듯 하다.

치료 기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감독이기에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분명 그라운드에 다시 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온 그라운드의 삶은 '투쟁의 역사'였다. 그는 이겼고, 이 자리까지 왔다.

7일 '이광종 아이들'이 태국 킹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A대표팀이 출격한 태국과의 최종전에서 '개최국의 텃세'를 넘고 또 넘어 득점없이 비겼다. 2승1무를 기록한 U-22 대표팀은 챔피언에 올랐다. 그들은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스승을 향해 쾌유를 비는 '절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광종 감독님은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저희를 지도해준 분입니다. 우리의 우승이 조금이나마 병마를 이겨내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연제민(수원)이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이다.

모두가 기도하고 있다. '감독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